내가 읽은 시

피리-전봉건-

불량아들 2011. 9. 26. 12:26

피리

  -전봉건-



대나무

잎사귀가

칼질한다.

해가 지도록 칼질한다

달이 지도록 칼질한다

날마다 낮이 다 하도록 칼질하고

밤마다 밤이 다 새도록 칼질하다가

십 년 이십 년 백 년 칼질하다가

대나무는 죽는다.

그렇다 대나무가 죽은 뒤

이 세상의 가장 마르고 주름진 손 하나가 와서

죽은 대나무의 뼈 단단하고 시퍼런

두 뼘만큼을 들고

바람 속을 간다.

그렇다 그 뒤

물빛보다 맑은 피리소리가 땅끝에 선다

곧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