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책 속의 칼-남진우-

불량아들 2013. 5. 16. 14:47

책 속의 칼

-남진우-


문득 책을 펼치다

날선 종이에 손을 베인다

얇게 저민 살 끝에서 피가 번져나온다

저릿한 한 순간, 숨을 들이쉬며 나는 깨닫는다

접혀진 책장 곳곳에 무수한 칼날이 숨겨져 있음을

책은 한 순간의 번득임으로 내 머리를 절개한 뒤

어느새 낯선 말들을 밀어넣고 닫혀버린다

금속성의 외침이 큰골 작은골 사이를 꿰뚫고 지나간다

하여 깊은 밤 책을 덮으며 나는

작은 전율과 함께 뒤늦게 깨닫는다

아무리 고개를 내저어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온 칼날은

쏟아버릴 수 없다는 것을 날선 종이들이

두개골 속에서 부스럭거릴 때마다

터질 듯한 아픔으로 신음하며

컴컴한 벽에 온몸을 부딪쳐야 한다는 것을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십환-심호택-  (0) 2013.05.16
바다-강신애-  (0) 2013.05.16
다시 하얗게-한영옥-  (0) 2013.05.16
빗소리-박형준-  (0) 2013.05.16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김선우-  (0) 2013.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