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칼
-남진우-
문득 책을 펼치다
날선 종이에 손을 베인다
얇게 저민 살 끝에서 피가 번져나온다
저릿한 한 순간, 숨을 들이쉬며 나는 깨닫는다
접혀진 책장 곳곳에 무수한 칼날이 숨겨져 있음을
책은 한 순간의 번득임으로 내 머리를 절개한 뒤
어느새 낯선 말들을 밀어넣고 닫혀버린다
금속성의 외침이 큰골 작은골 사이를 꿰뚫고 지나간다
하여 깊은 밤 책을 덮으며 나는
작은 전율과 함께 뒤늦게 깨닫는다
아무리 고개를 내저어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온 칼날은
쏟아버릴 수 없다는 것을 날선 종이들이
두개골 속에서 부스럭거릴 때마다
터질 듯한 아픔으로 신음하며
컴컴한 벽에 온몸을 부딪쳐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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