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인보

대한민국 미용 명장 1호 김진숙

불량아들 2019. 3. 15. 14:03

미용인보(美容人譜)3


헤어아트로 미용사 영역을 확장하다

대한민국 미용 명장 1호 김진숙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 분들과 함께 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이완근(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대한민국 미용 명장 1

김진숙 명장을 호칭하는 타이틀은 여럿 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부회장직을 비롯, 고전분과특별위원장, 홍보위원장, 영산대학교 미용예술학과 교수, 한울이미용실 대표, 대한민국 미용 명장 1호 등등.) 기자가 김진숙 명장이라 칭함은 대한민국 미용 명장1호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김진숙 명장은 2002년 미용분야에서 맨 처음 명장으로 등극했다. 미용사의 쾌거라 할 만한 사건이었다. 미용사 현업 인구를 30만이라고 가정했을 때 30만분의 1의 위치에 오른 거였으며 기자는 매우 합당한 대우라고 당시 생각했었다.

최초로 미용명장이 되고 난 후 김진숙 명장으로부터 기자에게 전화가 왔었다. “국장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나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화를 받고 기자는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잡지에 작품을 실어주고 인터뷰 몇 번 해줬을 뿐인데... 잡지에 실었던 작품이나 인터뷰, 행사 등이 명장 심사를 받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잡지를 꼼꼼하게 스크랩해두었단 사실도 함께 알았다.

 

광주의 미용 명소 한울이미용실

김진숙 명장을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기자는 사진기자, 취재기자와 팀을 이뤄 지방 편을 매달 특집으로 싣고 있었다. 예를 들어 광주 편을 싣는다면 23일 동안 광주에 출장 가서 광주 지방 미용인들의 작품을 현지에서 촬영해서 싣거나, 광주 미용인들이나 숍을 취재해 싣는 것이었다. 매달 지방 미용인들을 선정해서 날짜를 맞추고 작품을 촬영하는 게 힘들었지만 지방 미용인들과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고 그만큼 보람도 컸다. 미용인들의 정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출장 마지막 날 저녁에는 정이 들어 대취하는 게 다반사였다.

말이 많이 빗나갔다. 1990년 후반 광주 특집 편 촬영 중 광주 한울이미용실을 찾았다.(당시 한울이미용실의 명성은 자자했다.) 숍 안에 머리카락을 이용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기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머리카락으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구나처음 보는 데도 필이 꽂혔다. 당시 화가들과 교류하던 기자는 머리카락을 이용한 작품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숍을 취재하고 저녁밥으로 대나무밥통 식사를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남도의 품위와 멋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어머니에 그 딸

그 후로도 김진숙 명장과는 적지 않은 대화를 가질 수 있었다. 김진숙 명장이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부회장과 각종 위원장을 맡으면서 서울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따님인 손진아 양이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서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손진아 양은 국제적인 미용인으로 성장해 미국 시카고에 있는 피봇포인트의 국제강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금은 귀국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자가 김진숙 명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인품은 물론이려니와 고전머리, 헤어아트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헤어아트부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하고 싶다. 예술의 한 분야로 헤어아트를 만든 장본인이 김진숙 명장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김진숙 명장의 헤어아트에 더 심취할 수 있었던 기회는 201210월 광주의 <한국미용박물관(관장 이순)> 개관 4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열리고 있는 김진숙 명장의 꽃의 노래를 관람하는 자리였다. 이 전시회에서 김진숙 명장은 30 여점의 헤어아트 작품을 선보였는데 모든 작품이 공예의 수준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도 남음을 기자는 목도하였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미적 가치만을 따져보더라도 유화만큼 뛰어나며 그 이상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때 김진숙 명장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 중 생각나는 게 헤어아트를 미술의 한 분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미술인, 미술 평론가와의 교류도 중요하며 특히 미용인에게 보급하고 전수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헤어아트는 미술의 한 분야

김진숙 명장은 헤어아트를 미용인들에게 알리는데 힘쓰고 있는데, 대한미용사회중앙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헤어아트 부문을 만들어 기자를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키기도 하고, 본인이 직접 명장 전을 열어 헤어아트 보급에 열정을 쏟고 있다.

특히 지난 해 88일부터 14일까지 인사동 CJ 광주전남 갤러리에서 주옥 같은 헤어아트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 미용에서 예술을 보다전은 미용인은 물론 일반들에게까지 헤어아트의 참맛을 알게 했다. 기자는 이날 전시회를 관람하고 흥에 겨워 김진숙 명장을 비롯, 몇 분과 더불어 뒤풀이를 가졌고 어김없이 필름이 끊긴 채 귀가했다. 다음 날 우리집 식탁에는 꼬깃꼬깃해진 비닐봉투에 전시회에서 받은 명장님 작품이 새겨진 도자기머그컵이 그대로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으면 술 취해 몇 시간 동안 인사동을 헤맸으면서도 작품이 새겨진 머그컵을 집에까지 가져왔겠느냐며 울 마누라는 지금도 대견해 한다.

 

대한민국 미용의 미래

김진숙 명장은 바쁘다. 헤어아트 창시자로서 헤어아트를 가르치고 전수하는 데 힘쓰고 있으며 대한민국 미용 명장 1, 중앙회 부회장, 홍보위원장, 기술강사로 바쁘며,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데도 분주하다. 그런 바쁜 삶에서도 기자와도 종종 통화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상의하고 있으니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으랴.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술

김진숙 명장

 

내 손안엔 아무 것도 없지라잉

마술사의 트릭도

미장센을 향한 두려움도

없지라잉

머리카락을 사랑하고

미용을 향한 애정 밖에

없지라잉

그러다봉께

고구려 여인이 튀어나오고

미술과 미용이 잘도 어우러져

헤어아트로 잉태하더랑게잉

신명나는 예술

즐거운 인생이어라

 

이제 고려, 조선 여인에

고구려, 백제, 신라 여인, 미래의 여인까지 합세

함께 놀 수 있으리

 

예술은 캄캄한 밤에 탄생된당게

질긴 삶을 이겨내야 꽃이 된당게

누군가는 알거여잉

오늘 밤도

머리카락 들고

촛불 밝히는 한 사람이 있음을 

 

  


  

<김진숙 명장 약력>

산업체 경력

1976~현재 한울이미용실 경영

 

약력

미용예술학 박사

2002년 대한민국 미용명장 1

2019년 현재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부회장

대한미용사회 고전분과 특별위원회위원장

대한미용사회 홍보위원장

영산대학교 미용예술학과 교수

한울이 미용실 대표

김진숙 헤어아트 연구소 소장

소상공인 컨설턴트

 

작품활동

 

1997년 광주비엔날레 "미술과 헤어의 만남" 발표를 시작으로

2018년 인사동 "미용에서 예술을 보다" 헤어아트전시회 외 50여회 전시 및 해외전시 다수

1987~2014년까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및 각종 미인대회 진, , 미 등 80여명 이상 배출 1985~2008년까지 기능올림픽 지방대회 및 전국대회 금, , 동 수상자 꾸준히 배출

대한미용사회 도지사배, 시장배 및 중앙 회장배에서 헤어쇼 다수

1980~현재 전국기술강사로 활동

 

 

<뷰티라이프> 201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