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담배꽃을 본 것은 -나희덕-

불량아들 2013. 5. 16. 14:14

 

 

 

담배꽃을 본 것은

  -나희덕-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을 보았다

 
분홍 화관처럼 핀 그 꽃을

잎을 위해서

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

잎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툭, 툭,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

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

담배꽃 한줌 비벼서 말아 피우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족두리도 풀지 않은 꽃을 바라만 보았다

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夏至도 지난 여름날

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있는,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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