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
-문태준-
모스끄바 거리에는 꽃집이 유난히 많았다
스물네시간 꽃을 판다고 했다
꽃집마다 ‘꽃들’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나는 간단하고 순한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
‘꽃들’이라는 말의 둘레라면
세상의 어떤 꽃인들 피지 못하겠는가
그 말은 은하처럼 크고 찬찬한 말씨여서
‘꽃들’이라는 이름의 꽃가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야생의 언덕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의 보살핌을 보았다
내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두루 덥히듯이
밥 먹어라, 부르는 목소리가 저녁연기 사이로 퍼져나가듯이
그리하여 어린 꽃들이
밥상머리에 모두 둘러앉는 것을 보았다.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평화-이병일- (0) | 2013.05.16 |
---|---|
수면-권혁웅- (0) | 2013.05.16 |
우주의 어느 일요일-최정례- (0) | 2013.05.16 |
담배꽃을 본 것은 -나희덕- (0) | 2013.05.16 |
피리-전봉건- (0) | 2011.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