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중시를 써야겠다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아내와 집 뒤 큰 절로 산책을 나갑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몇 그루와
교복을 입은 소녀가 나올 것 같던 골목길을 헐어내고
큰 절은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큰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큰 절에서 공양한 무료 커피를 뽑아들고
밤 하늘, 밤 공기에 행복해진 아내는
어느 수녀 시인의 시를 줄줄 잘도 외웁니다
시인의 아내라는 사람이
남의 시를 잘도 외웁니다
목소리 좋다며 박수를 쳐주지만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책상에 앉아
-나도 대중시를 써야지
머리를 질끈 동여매지만
어디 대중시라고 줄줄 써지나요
창 밖에선 개가
어둠을 향해 컹컹컹 짖습니다
<뷰티라이프> 2018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