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자리 물고기 자리 맑은 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물결이 이는 이유는 물고기가 제 속살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 후회 없는 나날이 어딨냐며 물고기는 세찬 물결을 거슬러 오르고 비늘만 반짝이는데 물고기 지나간 자리 햇빛이 메우고 있다 2021년 7월호, 창간 22주년 기념호 자작시 2024.01.04
철없는 찰나 철없는 찰나 언 강 몸 푸는 소리 요란한 이른 봄날 어머니 창틀을 열심히 닦고 계시다 -이 많은 먼지는 어디서 왔을꼬? 한마디에 허울 많은 아들은 허공만 본다 소리 없이 쌓이는 것이 먼지만은 아닐진대 어머니의 세월도 속절없이 쌓이고 주름 진 손등 위에 빛나는 먼지 옷고름 탈탈 털고 여름 채비 나가자고 손 까부는 저 철없는 찰나 2021년 6월호 자작시 2024.01.04
봄, 아지랑이 봄, 아지랑이 꽃잎 흩날리는 봄날 아침 부고 소식을 듣다 향년 96세 한 세기의 시작과 끝 보이지 않는 숫자 속에 세월의 흐름만 흑백과 컬러로 뒤엉키고 봄날 오후의 시작은 찬연하다 아지랑이와 함께 새로운 소식은 오고 아기의 첫 세상 나들이 울음소리 요란했으리 무엇을 하였던가 물어볼 새도 없이 죽음과 탄생은 끊어진 시간과 메워야 할 공간 사이로 드나들고 봄볕 저리 아롱대는 이유를 진정 모르겠네 2021년 5월호 자작시 2024.01.04
봄 마중 봄 마중 이른 봄 할아버지 할머니 봄나들이 가시네 성치 않은 무릎 서로 의지하며 아지랑 아지랑 저만치 걸어가시네 -할멈 어디서 꽃향기가 나 -목련이 피기도 전이구만요 -할멈 향내인가 봐 할머니 홍조 봄꽃 봉오리에 몽땅 숨어버렸다 2021년 3월호 자작시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