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어머니의 전화

불량아들 2007. 8. 8. 17:31

어머니의 전화

 

요즘 날씨 참 거시기 허다.

비는 이쁜 애인 집에 보내기 싫듯 오락가락, 날씨는 후텁지근. 매미들만 신났다.

 

모처럼만에 거실에 대나무 돗자리 펼쳐놓고 수박 냉채에 소설책 읽는 재미가 쏠쏠타.

양 창문을 열어놓으니 살랑살랑 뭉실뭉실한 바람이,

‘행복은 이런 것이다’ 살갛에 뭉기적 뭉기적 표시해 놓고 사라진다.

 

그렇게 한나절을 유유자적하다 어둠이 내리니 육신의 정이 그리워진다.

시골 어무니한테 전화한다.

전화벨이 한참을 울리다 운명하기 직전에 “여보세요.” 수명을 연장한다.

 

“집에 아무도 없어요?” 괜히 신경질이다.

 

“이제 밭에서 막 왔다. 저녁은 어떡했냐?”

 

불혹을 넘긴 아들내미 끼니 걱정부터 앞서는 어무니다.

 

“먹었지요. 근데 아직까지 일했어요. 인자 좀 쉬시라니까요.”

 

아들내미 입장에서 이제 일 좀 그만하셨으면 싶다.

논도 선자 주고 밭일도 먹을 것만 하라는 데 막무가내시다.

예전처럼 무릎도 성치 않으신 모양이다.

시골에서 여가 생활 요량으로 먹을 거나 운동 삼아 했으면 좋으련만,

끙끙 앓으시면서도 이렇게 해가 떨어지면 집에 들어오시는 모양이다.

 

“밭에 풀이 자라는데 어찌 보고만 있냐. 남들이 욕헌다.”

 

‘밭에 풀이 자라면 남들이 욕한다’고 들일에 해 짧은지 모르시는 거다.

 

후안무치로 어린이를 유괴하고, 지뢰밭을 농지로 속여 고가로 팔아먹고,

몇 만원 때문에 사람 목숨을 해치는 뉴스가 만발하는 요즘 세상.

 

정신이 훌쩍 든다.

욕심내지 않고 시골 사람들 같이만 산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이처럼 팍팍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뜬금없이 한다.

 

남들이 욕하는 것을 진정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이 세상을 산다면,

좀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어무니 전화를 받으며 후두부를 강하게 때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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