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를 하며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한다
밤새 충전해 두었던 면도기를
얼굴에 대자
거목 쓰러지듯 우렁찬 소리를 내는 녀석
시원한 삶의 현장
어제 아침
면도를 하려다가
앓아누운 할머니보다도 더 병약한 소리를 내는
전기면도기를 탓했었다
초벌 모내기 논만큼 띄엄띄엄 깎였었다
며칠을 쓰기만 했던 모양
밤새 전기를 주었더니
이 우렁찬 소리
면도를 하며
사람이나 동물이나 기계나
세상에서 활동하는 모든 것들
먹은 만큼 일한다는 사실을,
준만큼 보답한다는 사실을,
안다
세상의 이치 또 깨닫는다
출근길에
머리에 띠를 둘러맨 사람들
무엇인가 더 달라고 아우성하는 모습
보인다
<뷰티라이프> 201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