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
-류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 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여자와
외항선 타고 밀항한 남자 따위 기다리지 않는 여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주는 여자와
유행가라곤 심수봉밖에 모르는 여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여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여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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