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손톱 다듬는 여자

불량아들 2015. 11. 16. 14:01

손톱 다듬는 여자

 

잘록한 허리를 하고

머리 헝클어진 여자

맥주 한 병에 얼굴 붉어진 여자

정성스레 손톱을 다듬네

 

빨강 노랑 색깔도 칠하고

형광등 아래 손톱을 비춰보며

삶은 이렇게 수런거리는 것이라는 듯

쯧쯧 혀를 차기도 하고

책상 밑 먼지도 쓰윽 훑어보면서

잘도 손톱을 다듬네

 

이제 술 냄새 풍기며

그녀의 남자가 들어올 시간

지구 반대쪽에서 그는 걸어오리

찌그러진 걸음걸이로 날아오리

 

나는 그 남자의 여자

잘록한 허리를 하고

손톱을 다듬으며

지구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그를

맞으리

 

나는 찌그러진 걸음걸이로 날아오는

술 취한 남자의 여자

쯧쯧 혀는 차지 않고

정성스레 손톱을 다듬으리

형광등 불빛 아래

빨강 노랑 손톱을 비춰보기도 하리

 

마침내 잘 다듬어진 손길로

지구 반대쪽에서

찌그러지게 달려온 그의

등을 긁으리

귓구멍도 파주리

 

<뷰티라이프>201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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