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인보(美容人譜)8
헤나로 머리를 건강하게......
부산 '아가헤어' 서희애 원장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 분들과 함께 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이완근(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바다색이 깊어지는 이유
-서희애 원장
바다를 그리고픈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하얀 꿈을 도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바다는 청색, 하늘은 먹색, 땅은 황금색이었다
사람을 그리고 싶어졌다
사는 방법을, 마음을 그리고 싶어졌다
먹고사는 법을 바꾸고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을 때
세상이 환해졌다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머리색은 자유자재로 바뀌었다
세상은 그런 것이었다
그녀의 손은 자유로워졌고
세상을 향한 덧칠을 하나씩 지워갔다
아름다워라
그녀가 지나간 자리
건강한 흔적들이
웃음을 머금고 있다 하더라
바다색이 깊어진다 하더라
바다색은 사람 마음을 머금고 산다
잡지 표지 연출하며 인연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기자가 ‘뷰티라이프’란 미용 잡지를 창간한 때는 1999년 7월이었다. 미용인들에게 새로우면서도 획기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잡지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해 봄부터 끙끙 앓다시피 해서 7월에 내놓은 잡지가 앞뒤 표지를 두 개 만든 뷰티라이프였다.
잡지를 만들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표지를 연예인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미용인은 연예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데, 몇 몇 미용인을 제외하고는 연예인의 머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기자는 방송국 PD를 비롯,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대학 선, 후배와 사회 동료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연예계와 적지 않은 교류를 하고 있었던 기자는 연예인과 미용인들을 함께 어울릴 수 있게 하고 친분을 맺게 할 수 있는 것이 표지 연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매달 연예인의 표지 촬영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해오고 있으니 기자의 뚝심도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그림을 그리다가 뒤늦게 미용에 입문
얘기가 많이 빗나갔다. 서희애 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잡지 표지 연출 때문이었다. 당시 제주도지회장으로 있던 이복자 회장이 자신의 미용 후배이며 인간성 좋고 미용 실력이 대단한 미용인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추천한 미용인이 부산의 서희애 원장이었다. 잡지를 창간하고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서희애 원장과의 표지 촬영 작업은 참으로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때 그림을 그리다가 여러 사정으로 미용을 늦게 배웠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기자는 뒤풀이를 빌미로 서희애 원장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대화가 통하는 미용인을 한 분 더 만났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후로 부산에서 행사가 있거나 취재할 일이 있으면 염치불구하고 서희애 원장을 찾았고, 서희애 원장은 예의 그 웃음 띤 얼굴로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부산의 여러 곳을 다녔다. 파도소리가 정다운 광안리 횟집에서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맛을 그대로 간직한 싱싱한 각종 회를 맛볼 수 있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엔가는 해운대 달맞이고개 방갈로에서 장어를 짚에 구워먹으며 밤하늘의 별과 달을 감상하기도 했다. 어디 그것뿐이었겠나. 해녀들이 금방 잡아왔다는 꼼장어 파는 곳과 파도가 치면 곧바로 방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 식당에서 파도소리를 안주 삼아 추억을 쌓기도 했다. 쓰다 보니 만날 먹기만 한 것 같은데 일도 많이 했다. 부산지역 미용인들도 많이 만났다.
경성대학교 헤어뷰티최고위 과정 주임교수
서희애 원장이 경성대학교 헤어뷰티최고위 과정의 주임교수를 맡았다. 헤어뷰티최고위 과정은 매년 12월에 졸업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서희애 원장은 이때마다 기자를 학교로 초청했고, 기자는 서울에서 큰일이 없는 한 몇 년을 계속 초청에 응했다. 경성대학교 헤어뷰티최고위 과정의 졸업 작품 전시회는 축제의 장에 다름 아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답시고 서희애 주임교수는 기자에게 축사를 매번 부탁했고 기자는 기쁜 마음으로 축사를 했다. 몇 년 전의 잡기장을 보니 “경성대학교의 헤어뷰티최고위 과정의 졸업 작품 전시회는 서울의 이대나 숙대의 최고위 과정의 졸업 작품 전시회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주임교수이신 서희애 교수님의 애정과 재학 중인 부산, 경상도 미용인들의 저력이 힘을 합쳐 빚어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성대학교 헤어뷰티최고위 과정의 무한한 발전을 빕니다.”라고 했던 축사가 있었다.
경성대학교 헤어뷰티최고위 과정의 졸업 작품전이 끝나면 기자는 뒤풀이까지 꼭 참석해야 했다. 그곳에서 부산, 경상도 미용인들과 많은 대회를 나눈 것도 기자에겐 좋은 경험이 되었다. 예약했던 기차표를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새벽녘에 서울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자에겐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헤나의 매력에 빠져 헤나 연구, 보급
서희애 원장은 요즘 헤나 연구와 교육 그리고 보급에 여념이 없다. 서희애 원장이 헤나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3년 전의 일. 헤나의 매력에 빠져 헤나를 연구하게 되었다. 헤나의 장, 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한 끝에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 헤나를 활용하여 지금은 퍼머까지 잘 되는 헤나를 미용인들에게 교육, 보급하고 있다. 좋은 헤나를 연구하기 위해서 부산대학교 방사능식물검사소를 비롯, 식물에 대한 검사소, 검역소를 수차례 찾아 자문과 검사를 반복 실시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지금은 헤나에 대한 여러 부작용을 상쇄하고 헤나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헤나를 미용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며 세미나와 특강을 하고 있다.
모든 부탁 OK
서희애 원장의 체구는 자그마하다. 만날 때마다 아기와 같은 그 웃음을 잃지 않고 보낸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조곤조곤 말할 때면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남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도와주는 마음이 서희애 원장의 천성 같다.
여름철, 우리 잡지사 기자들이 부산으로 바캉스라도 갈라치면 기자는 여지없이 서희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에게 부탁하기 싫어하는 기자도 본인 일이 아닌 우리 기자들의 일이라면 부담 없이 서희애 원장에게는 부탁했다. 이런 미용인이 있다는 것은 기자에게 행운이나 마찬가지다.
근래,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씩 전화 통화만 했다. 우리 잡지사의 부산 통신원(?)이기도 한 서희애 원장에게 오늘은 전화를 걸어 밀린 수다를 왕창왕창 풀어야겠다.
<서희애 원장 프로필>
*ISOMA 메이크업 색채학 수료
*동부산대학 졸업
*PIVOT 전 과정 미국 본교 졸업
*동아대학교 산업대학원 수료
<수상 경력>
*1981년 부산 기능경기대회 금상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장배 커트 은상
*2001년 미국 IBS 커트 3위, 헤어바이나이트 2위, isoma 1위
*중앙회장상 7회, 지회장상 4회, 구청장상 4회, 부산시장상 2회 수상
<봉사 및 교육>
*2015년에서 현재까지 석포여중 자유학기제(전문직업인) 특강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남해, 김해, 창녕, 산청 등 관내 오지 미용 봉사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매년 봉사 활동
현재 경성대학교 헤어뷰티최고위 과정 주임교수
부산 해운대구 ‘아가헤어’ 원장
<뷰티라이프>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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