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0)
사과없어요
김이듬(1969~ )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왔으니, 이봐요, 그냥 짜장면 시켰는데요, 아뇨, 손님이 삼선짜장면이라고 말했잖아요, 아 어쩐다, 주인을 불러 바꿔 달라고 할까, 아 어쩐다, 그러면 이 종업원이 꾸지람 듣겠지, 어쩌면 급료에서 삼선짜장면 값만큼 깎이겠지, 급기야 쫓겨날지도 몰라, 아아 어쩐다, 미안하다고 하면 이대로 먹을 텐데, 단무지도 갖다 주지 않고, 아아 사과하면 괜찮다고 할 텐데, 아아 미안하다 말해서 용서받기는 커녕 몽땅 뒤집어쓴 적 있는 나로서는, 아아, 아아, 싸우기 귀찮아서 잘못했다고 말하고는 제거되고 추방된 나로서는, 아아 어쩐다, 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래 내가 잘못 발음했을지 몰라, 아아 어쩐다, 전복도 다진 야채도 싫은데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0번째 시는 김이듬 시인의 “사과없어요”입니다.
인간이 나면서부터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따지기 전에 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예쁜 마음을 보듬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 듯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을망정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드러난 상처를 보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살맛나는 세상이 되겠지요. 자기주장과 이익만을 앞세우며 사는 동네에서는 빈 수레 동냥 가듯 소리만 요란. 자신의 논에만 물을 대려고 길길이 날뛰다가 논에 물이 넘쳐흘러 논둑이 허물어져버린, 어릴 적 용삼이네 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우리 사회 곳곳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易地思之’ 단어의 뜻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조금만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은 현대인인 것입니다. 생활이 복잡하고 얽혀있을수록 그 해결책은 간단한데 또 그것이 요물마냥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시인은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온 걸 두고 고민합니다. “짜장면을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온 걸 두고 생각에 잠깁니다. “주인을 불러 바꿔 달라고”하면 간단한 일일 텐데 쉽게 그러지 못하는 것은 종웝원이 “급료에서 삼선짜장면 값만큼 깎이”거나 “쫓겨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옜다 잘됐다 싶어 삼선짜장면 먹고 오리발 내미는 사람들하고는 부류가 다릅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에 아직도 정이 있습니다. 살만한 세상입니다. 인류애를 부르짖고 동족애를 침 튀어가며 설파하는 사람들보다 조용하지만 밑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보듬어가는 이들, 대한민국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사과없어요”는 센 척 하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온몸에 배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외침입니다. 자기만이 지역을 살리고 지역 주민을 사랑하고 있다고 오늘도 핏발 세우고 있는 나리들 앞에서 이 시를 조용히 읽어주고 싶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3월호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뚜레-신휘 (0) | 2020.04.22 |
---|---|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왕은범 (0) | 2020.03.20 |
게르니카-이지엽- (0) | 2020.01.20 |
시든 꽃-신단향- (0) | 2019.12.23 |
혼수를 뜯다-서양숙- (0) | 2019.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