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왕은범

불량아들 2020. 3. 20. 11:39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1)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왕은범(1959~ )

 

가만

하늘을 보면

별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 앉으면

다정스레 쌈을 싸서 바알간 입에 넣어주고 싶은 사람

 

안개 자욱한 호숫가 카페에 앉아

그윽한 눈 이야기 나눌 그런 사람

 

눈이 하얗게 하얗게 벚꽃처럼 내리기 시작했을 때

전화기를 꺼내 눈이 와라고 속삭이고 싶은 사람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순백의 구절초 같은 사람

 

볕 좋은 창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구름처럼 몽글몽글 그려지는 사람

 

나는 진정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당신의 보랏빛 그리움 같은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1번째 시는 왕은범 시인의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입니다.

 

의미 있게 삶을 사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를 이뤄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의술을 익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병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진 사람 또한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맞길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점심나절에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쪽 지방을 여행 중인데 진달래, 산수유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그 감흥을 같이 나누고자 전화했다는 겁니다. 흥분된 목소리에 봄소식이 그대로 전달돼옵니다. 갑자기 주변이 환해집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황홀한 풍광이나 광경,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면 같이 보고, 들으며,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자동 발화합니다. 값진 생을 산다는 것은 이처럼 좋은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월의 변화를 체감하며 그 느낌을 나눠줄 수 있는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보맛있는 음식 앞에 앉아 있고 호숫가 카페에 앉아있으며 눈이 벚꽃처럼 내릴 때, “별처럼 떠오르고입에 넣어주고 싶그윽한 이야기 나누며 같이 속삭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 아니, 내가 그런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네요.

 

순백의 구절초 같은 사람미산에 살고 있는 시인이 보랏빛 그리움을 실어 우리 모두에게 연서를 보냈습니다. 이제 답장을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겠지요.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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