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78)
시든 꽃
신단향
엊그제, 생일날
배달온 꽃이 시든다.
꽃잎 사이사이 링거처럼 물방울 대롱거리는데
길 떠나려 서두르는 중이다.
활짝 핀 웃음 흘려주지 않고
꽃봉오리 얼굴 꽉 굳은 채,
잎 옹그리고 고개 숙인 채,
낯선 길목이 두려워 옹그려지는 듯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78번째 시는 신단향 시인의 “시든 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어린아이와 꽃을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꽃은 그만큼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어린아이는 마음대로 취할 수 없지만 꽃은 마음먹기에 따라 가꿀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습니다. 활짝 핀 꽃을 본다는 것은 마음이 밝아지고 환해진다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꽃은 칭송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든 꽃”입니다. 시들어가는 꽃입니다. 꽃이 시들어간다는 것은 인간으로 표현하면 늙어간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꽃이나 인간이나 언제나 아름답고 젊게만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늙어간다고 한탄만 할 수 없듯이 꽃이 시들어간다고 꽃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꽃이 한창 피어날 때 우리는 그 꽃을 보며 얼마나 즐거워하고 감탄했던가요. 꽃의 사명은 그뿐이었습니다.
“생일날/ 배달은 꽃이 시”듭니다. “활짝 핀 웃음 흘려주지 않고” “길 떠나려 서두르는 중”입니다. 꽃이 활짝 핀 웃음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간과했을 것입니다. 꽃이나 우리 생이나 찬란했던 한때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시들어가는 꽃에서 생을 유추합니다. “낯선 골목이 두려워 옹그려지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얼굴 꽉 굳은 채,” “고개 숙인 채,”하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이 묻어납니다. 물아일체, 꽃의 일생이 사람의 일생입니다.
시들어가는 꽃송이에서 시인은 많은 것을 느낍니다. 그러곤 덤덤하게 바라만 봅니다. 고요가 거실을 스미듯 지나갑니다. 시인은 눈으로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으로 꽃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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