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77)
혼수를 뜯다
서양숙(1957~ )
외출했다 일찍 들어온 날,
당신은 뜯어보았던 내 이불 홑청을
다시 꿰매고 있었지요
혼수 이불 속
솜을 확인하고 있었지요
목화가 라일락이 되어 있을까 봐요?
목화가 목련이 되었을까 봐요?
목화입니다 목화솜입니다 아니,
내 엄마가 밤새 바스러 넣은 하얀 찔레꽃입니다
핏빛 숨긴 찔레꽃입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77번째 시는 서양숙 시인의 “혼수를 뜯다”입니다.
결혼은 한 개인과 개인이 만나 하나의 집안을 세우는 일입니다. 가풍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상호 조화 융합을 이루면서 새로운 가풍을 가진 집안을 만드는 일이지요. 결혼은 그래서1+1=2가 아니라 1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통계적으로 결혼 후 3년까지는 싸움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라 습관과 풍속이 다른 두 사람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부부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참된 부부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새댁이 “외출”을 했습니다. 오랜만의 외출이었겠지요. 큰일을 치르고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사니 실로 오랜만의 외출이었을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늦게 들어올 줄 알고 며느리가 혼수로 가져온 “이불 홑청”을 뜯습니다. 딱히 며느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품질 좋은 목화솜인가 궁금했겠지요. 그런데 아뿔사 외출했던 며느리가 일찍 귀가하고 말았습니다. 뜯어낸 이불을 다 꿰매기도 전인데 말입니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무안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며느리는 무척 섭섭했나 봅니다. 저 목화솜 이불을 마련하기 위해 친정어머니는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하는 생각에 더 서운합니다. 가난한 친정어머니는 딸이 기죽지 않고 시집살이하기를 바라셨겠지요. 애지중지 손수 가꾼 목화솜을 좋은 걸로만 골라 딸의 혼수이불을 장만했을 터. 목화솜 이불은 어머니의 헌신과 딸에 대한 사랑이 담긴 “핏빛 숨긴 찔레꽃”에 다름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시어머니도 또 다른 딸의 어머니! “하얀 찔레꽃” 같은 심성을 지녔을 것입니다. 그러니 “혼수를 뜯”었다고 너무 서운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해하고 싸안고 보듬어서 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테니까요.
목화솜 틀어 딸의 혼수이불을 마련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와 닿는 “혼수를 뜯다”였습니다. 찔레는 하얀 꽃을 피우지만 대공을 자르면 붉은 수액을 쏟아냅니다. 하얀 것은 왜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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