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바닥에 대하여-오성인-

불량아들 2020. 5. 21. 10:34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3)

 

바닥에 대하여

오성인(1987~ )

 

할당된 몫을 비우고도 밥그릇

핥는 데 여념이 없는 개, 바닥 깊숙이

스민 밥맛 하나라도 놓칠세라

잔뜩 낮춘 몸

 

지금 그의 중심은 바닥이다

 

온몸의 감각을 한군데로 끌어모으는

나차웁고 견고한

 

모든 존재들은 낮은 데서 발원하나

 

생이 맨 처음 눈뜨고

마지막 숨들이 눕는

계절이 첫발을 내디뎠다가

서서히 발을 거두어들이는

 

최초이며 최후인 최선이거나 최악인

 

더는 낮아질 일도 붕괴될 일도 없는

낮은 벽, 혹은

천장

 

낮춘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무게를

동시에 겪어 내는 일, 혼신을 다해

희로애락애오욕을 지탱해 내는 일

 

그러므로, 나는

낮을 것이다

개의 혀가 밥그릇 너머의 피땀까지

닦아 내듯, 이생과 그 너머의 생까지

두루 읽어 낼 일이다

 

기꺼이,

바닥을 무릅쓸 일이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3번째 시는 오성인 시인의 바닥에 대하여입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상상 이상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기본이 되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불편할 지경입니다. 영화관을 가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점 가는 것조차 꺼림직 합니다. 여행은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합니다. 개인뿐 아니라 대기업, , 소기업 할 것 없이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회비용이 엄청난 수준일 거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코로나19의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사회 시스템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인식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의 순기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전 세계의 공기가 맑아졌다거나 수질, 환경오염이 덜해졌다는 것은 코로나19의 순기능에 속할 수 있겠습니다.

 

시를 감상하면서 웬 코로나 타령이냐구요? 코로나19의 창궐은 인간의 부, 명예, 지위고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코로나19는 사람이 가진 부와 명예에 관계치 아니하고 빈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코로나19 앞에서만은 전 세계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재산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입니다. 코로나19 앞에서는 누구든 잔뜩 낮춘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흉흉한 시기, 그래서 이 시는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바닥은 실패한 자의 몫이 아닙니다. 하늘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바닥을 알아야 비상할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은 낮은 데서 발원합니다. 바닥=낮춘다는 것이고 낮춘다는 것은’ “혼신을 다해/ 희로애락오욕을 지탱해 내는 일입니다. 그러니 바닥은 이겨내야 하는 대상이 아닌 무릅쓸 일입니다.

 

승승장구만을 꿈꾸는 이 시대에 바닥을 되짚어 볼 것을 이 시는 상기해줍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중심을 바닥에 둘 일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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