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4)
그대에게 가는 저녁
권지영(1974~ )
어떤 말은 너무 깊어 꺼낼 수 없어요
어떤 말은 너무 얕아 꺼낼 수 없어요
어떤 말로도 그대를 대신 할 수 없어요
내가 유일하게 돌아갈
그대라는 단 하나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4번째 시는 권지영 시인의 “그대에게 가는 저녁”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말을 합니다. 그 말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때론 독이 되어 되돌아옵니다. 세상이 소음으로 뒤덮인 요즘 말도 또 하나의 공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표현하고자 할 때 시의적절한 말을 찾는 것은 가난한 집 밥상에서 고기를 찾는 것만큼 요원할 뿐입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내 마음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는 인물이라면 더하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며칠 전 아니 몇 시간 전, ‘그미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할까’하고 고민해본 사람이 어디 한둘뿐이리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단어와 형용사를 동원하더라도 그미에 대한 나의 사랑과 애정을 온전히 전할 수는 없겠지요.
“어떤 말은 너무 깊어 꺼낼 수 없”고 또 “어떤 말은 너무 얕아 꺼낼 수 없”는 건 언어의 표현 부족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염려가 너무 컸기 때문이겠지요. 여기서 시인의 깊은 속내가 보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면 할수록 나의 부족함만 부각됩니다.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러나 그대와 나는 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나의 존재가 “그대”라는 단어 앞에서 무력해지더라도 “내가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그대라는 단 하나”. 그리고 ‘그대=나’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순간....... 그래서 “그대에게 가는 저녁”은 반성과 성찰 그리고 새벽이 오기까지의 긴 시간을 암시하네요. 너무 깊어, 너무 얕아, 그대를 대신 할 수 없어 그대에게 가는 저녁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그런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다가갈 수 있는 그대=나!
우리의 삶은 복잡하고 다난하지만 그럴수록 “그대에게 가는 저녁”이 단순하게 짧고 깊어서 쉽게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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