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용불용설-한상호-

불량아들 2020. 7. 21. 12:14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5)

 

용불용설用不用說

한상호(1956~ )

 

자꾸

가늘어지는

 

그리운

힘줄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5번째 시는 한상호 시인의 용불용설입니다.

 

옛적에 쓴 잡기장을 들여다본 적 있나요? 사소한 친구와의 말다툼 때문에 하얗게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빨갛게 또는 노랗게 알록달록 물든 단풍을 보며 시상(詩想)에 잠겼던 그때 그 추억이 아롱아롱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을 보며 왜 그렇게 마음 설렜던 것일까요. 소나기는 멀리 있는 친구를 소환하기도 했습니다. 겨울날 하늘을 흐드러지게 수놓았던 눈송이는 미래를 향한 편지지이기도 했지요.

 

작은 일에도 깔깔깔 거리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 상해했던 하얀 백지 같던 마음은 세월과 함께 영원한 추억거리로만 남아 있습니다.

 

용불용설-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잘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진화이론으로 1809년 진화론자인 라마르크가 처음 제창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물학적 진화론에서는 용불용설을 믿겠지만 감정적인 면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전부 다 믿을 수는 없는 마음입니다. 시인을 포함한 우리 인간은 그리움이라든지 추억, 고향,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하여 머리가 지구만 해져도 놀라울 일이 아닙니다.

 

혈기왕성했던 힘줄도 가족을 위해 매일매일 쓰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용불용설에 따르면 세월이 가며 힘줄이 팔뚝만큼 커질 만한 데도 지금은 가늘 대로 가늘어진 그리운/ 힘줄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는 세월에 우리의 깊었던 젊음도 사랑도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월이 무상하기만 합니다. 오늘 따라 손등 위의, 장딴지 속의 힘줄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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