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7)
버섯
문성해(1963~ )
장마 지나간 뒤
땅이 하늘에게 거는 말풍선
그 길고 촘촘한 낙하를
땅이 받았다는 영수증
묽고 비린
비의 현신
누군가 허리를 굽혀 보게 하는
카운트다운 전의 로켓
오래 끄는
장마의 뒤끝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7번째 시는 문성해 시인의 “버섯”입니다.
올 여름엔 참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장마 중간 중간에 산행을 했었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등산객보다도 더 많은 버섯을 보았습니다. 버섯은 산길 죽은 나무 밑을 중심으로 도처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등산로에 서 있는 나무 말뚝에도 여지없이 버섯이 버젓이 피어 있어 놀란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처럼 많은 버섯이 있다는 생각을 예전엔 못했었습니다.
버섯은 그 모양 때문에 신기롭다는 생각은 물론 우주에서 온 생물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게 합니다. 집까지 갖추고 있으니 상상의 나래를 무궁무진하게 피어나게 하지요. 비 오는 날은 우산까지 받고 있네요.
시인은 버섯이 “땅이 하늘에게 거는 말풍선”이라고 참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했네요. 장마 끝에 버섯은 땅을 뚫고 솟아납니다. 비는 대지를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장마는 과유불급입니다. 받은 만큼 “땅”은 “영수증”을 발급합니다. 그 증표가 여기저기 솟아나는 버섯입니다. ‘하늘아 이제 비 그만 보내도 돼.’라는 신호 노릇도 병행하겠지요?
버섯은 영수증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카운트다운 전의 로켓”처럼 우리의 호기심을 최대한 발동합니다. 우리나라에 1000여 종이 넘는 버섯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시인은 버섯 하나로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어넣습니다. 시인은 존재 이전과 이후를 아우르는 주술사란 말이 맞는 듯합니다.
“비의 현신”인 버섯을 오늘 이후에는 더욱 유심히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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