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버섯-문성해-

불량아들 2020. 9. 21. 14:22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7)

 

버섯

문성해(1963~ )

 

장마 지나간 뒤

땅이 하늘에게 거는 말풍선

 

그 길고 촘촘한 낙하를

땅이 받았다는 영수증

 

묽고 비린

비의 현신

 

누군가 허리를 굽혀 보게 하는

카운트다운 전의 로켓

 

오래 끄는

장마의 뒤끝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7번째 시는 문성해 시인의 버섯입니다.

 

올 여름엔 참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장마 중간 중간에 산행을 했었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등산객보다도 더 많은 버섯을 보았습니다. 버섯은 산길 죽은 나무 밑을 중심으로 도처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등산로에 서 있는 나무 말뚝에도 여지없이 버섯이 버젓이 피어 있어 놀란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처럼 많은 버섯이 있다는 생각을 예전엔 못했었습니다.

 

버섯은 그 모양 때문에 신기롭다는 생각은 물론 우주에서 온 생물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게 합니다. 집까지 갖추고 있으니 상상의 나래를 무궁무진하게 피어나게 하지요. 비 오는 날은 우산까지 받고 있네요.

 

시인은 버섯이 땅이 하늘에게 거는 말풍선이라고 참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했네요. 장마 끝에 버섯은 땅을 뚫고 솟아납니다. 비는 대지를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장마는 과유불급입니다. 받은 만큼 영수증을 발급합니다. 그 증표가 여기저기 솟아나는 버섯입니다. ‘하늘아 이제 비 그만 보내도 돼.’라는 신호 노릇도 병행하겠지요?

 

버섯은 영수증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카운트다운 전의 로켓처럼 우리의 호기심을 최대한 발동합니다. 우리나라에 1000여 종이 넘는 버섯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시인은 버섯 하나로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어넣습니다. 시인은 존재 이전과 이후를 아우르는 주술사란 말이 맞는 듯합니다.

 

비의 현신인 버섯을 오늘 이후에는 더욱 유심히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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