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8)
슬픔을 사랑하겠다
이정하(1962~ )
저녁을 사랑하겠다.
해질녘 강가에 드리우는
노을을 사랑하겠다.
노을 속에 물결이
아름답게 일렁이는 것을 사랑하겠다.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
아니면 내가 가장 그리워했던 것들이
속절없이 저 노을의 세계로 흘러 들어가는
강가를 사랑하겠다.
나는 그렇게 저녁마다
수없이 그대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한다.
내 속에 있는 그대를 지우는,
혹은 그대 속에 있는 나를 지우는,
그 안타까운 슬픔을 사랑하겠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8번째 시는 이정하 시인의 “슬픔을 사랑하겠다”입니다.
사랑을 하셨나요? 이별을 해보았나요? 그렇다면 슬픔은 어떻게 잘 견디셨나요?
사랑과 이별은 마치 쌍둥이 같습니다. 사랑=이별,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공식처럼 인식합니다. 물론 이별 없는 사랑을 해서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런 짝들은 원시시대에 안경 낀 사람 찾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아름다운 장면이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같이 보고 싶다거나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은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갑니다.
둘만의 여행은 둘만의 추억을 쌓고 그 추억은 쌓여 두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 추억 속에는 “저녁, 강가, 노을”을 빠트릴 수 없습니다. 해질녘 강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수없는 밀어를 주고받았을 것이며,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인생을 설계했을 것입니다. 생각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사랑=이별입니다. 인류 역사상 그 공식은 깨지지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랑, 이별 다음은 슬픔입니다.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내 속에 있는 그대를 지우는,/ 혹은 그대 속에 있는 나를 지우는,”, “수없이 그대를 떠나보내는 연습을”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슬픔까지도 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안타까운 슬픔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얼마나 간절한 사랑을 했을까요. 그 사랑은 아마도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사랑이었을 겁니다.
가을입니다. 슬픔까지 사랑할, 아름다운 사랑이 더욱 그리운 가을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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