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90)
밤 열차
이철경(1966~ )
늦은 시간 남루한 사내가
노약자석에서 졸고 있다
내릴 곳을 잃었는지
이따금씩 초점 잃은 눈빛으로
부평초 마냥 공간을 흐른다
저 중년의 사내,
삼십 분 전
의자 난간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어깨를 보았다
저 꺾인 날개의 들썩임
전철도 부르르 떨면서
목 놓아 우는구나
중년의 무게에 짓눌린
밤 열차조차도 흐느끼며 뉘엿뉘엿
남태령 넘는구나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90번째 시는 이철경 시인의 “밤 열차”입니다.
코로나19라는, 여지 것 우리 사회가 겪어보지 못했던 질병으로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입니다. 1997년에 시작된 IMF시대보다 더한 고통을 우리들은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소상공인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입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유탄의 피해자는 평범한 보통시민들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늦은 시간 남루한 사내”는 요즘 우리 시대의 부모형제나 다름없습니다. 남루한 사내는 직장을 잃었거나 장사를 그만두었거나 회사의 문을 닫은 이 시대의 패배자 아닌 패배자일 것입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나이를 좀 드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중년의 사내”입니다. 노약자석에 앉아야 할 만큼 삶에 지친 모습이 여간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내는 자신의 아픔을 가족에게까지 차마 말을 못했을 것입니다. 퇴근한다든지 장사를 파할 시간까지 기다려 지하철을 탔을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술도 한잔했겠지요. 술 한잔의 기운이 사내에게 현실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흐느끼는 어깨”는 사내의 현실이자 우리 모두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볼 볼 도리는 없습니다. 힘내자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 사내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만은 읽을 수 있습니다. “부르르 떨면서// 목 놓아 우는”것은 전철이 아니라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밤 열차”는 소외된 이웃에게 보내는 시인의 따뜻한 헌시에 다름 아닙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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