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아버지의 방천-하병연-

불량아들 2021. 1. 20. 12:16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91)

 

아버지의 방천

하병연(1969~ )

 

진골 골짝 논에 방천이 나서

아버지 방천 쌓는다

 

진주성 성벽 같은 방천

 

큰 돌 앉히면 작은 돌로

둥근 돌 앉히면 모난 돌로

납작 돌 앉히면 강돌로

 

생김생김 모두 다른 돌이지만

 

공구고

찡구고

박아넣고

채우고

 

쓸모없는 돌 하나 없이

모두 모두 한 몸 되어

완성된 아버지의 방천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91번째 시는 하병연 시인의 아버지의 방천입니다.

 

3대 미성(美聲)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글 읽는 소리, 바둑 두는 소리, 우리 집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그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어릴 적 농촌의 일과는 바쁘기만 하였습니다. 그때는 비가 많이 와도 걱정,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었습니다. 가뭄이 극심할 때는 마을 산 밑에 있는 방죽의 문을 열어 각자의 논에 물을 댔습니다. 이웃들이 물꼬 앞에 앉아 자기 논에 물을 먼저 대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싸우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만큼 논농사는 온 가족의 생계에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큰비가 오고나면 아버지는 삽을 들고 논으로 나가셨습니다. 논 둑 방천이 난 곳을 메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곳을 메우고 나면 다른 곳이 방천 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정성스레 방천을 쌓으셨습니다. 방천을 막지 못하면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비롯,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주성 성벽 같은 방천이 만들어지는 이유입니다.

 

온 가족의 생계가 달린 아버지의 방천은 그래서 눈물겹고 안타깝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솟구치게 합니다.

 

아버지의 힘은 창조주의 그것과 닮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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