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중학교 선생-권혁소-

불량아들 2021. 3. 23. 10:57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93)

 

중학교 선생

권혁소(1962~ )

 

백창우의 동요‘내 자지’를

너무 무겁게 가르쳤다고

학부모들에게 고발당했다

 

늙어서까지 젖을 빠는 건 사내들이 유일하다고

떠도는 진실을 우습게 희롱했다가

여교사들에게 고발당했다

 

아파트 계단에서 담배 피고 오줌 쌌다는 주민 신고 받고

홧김에 장구채 휘둘렀다가

애한테 고발당했다

 

자지는 성기로 고쳐 부르겠다

젖 같은 얘긴 하지 않겠지만 만약 하게 될 일이 있다면

사람이나 포유동물에게서 분비되는,

새끼의 먹이가 되는 뿌연 빛깔의 액체로 고쳐 말하겠다

그리고 애들 문제는 경찰에 직접 맡기겠다

 

잘 있어라 나는 간다

수목한계선에 있는 학교여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93번째 시는 권혁소 시인의 중학교 선생입니다.

 

필자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선생님 말씀은 하늘 아래 그 누구도 대적 못할 위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도 선생님이 맑다면 그런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농사짓는 마을 이장님보다, 아버지보다 더 아는 것이 많고 피부도 고왔습니다. 선생님의 지식은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선생님 말씀을 거스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너무 무겁게 가르쳤다고”, “떠도는 진실을 우습게 희롱했다, “홧김에 장구채 휘둘렀다고발당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자지자지으로 가르치고, “아파트 계단에서 담배 피고 오줌싼 애를 엄하게 가르치는 건 선생님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마땅한 도리를 하는 선생님이 고발당하는 현실은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도 중학교 선생님이 발 딛고 지켜야 할 곳은 교정입니다. “잘 있어라 나는 간다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는 압니다. 시 속의 선생님은 잘못된 교육 환경을 탓하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지금도 꿋꿋하게 수목한계선에 있는 학교를 지키고 계시리라는 것을.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자지를 성기로 고쳐 부르, “새끼의 먹이가 되는 뿌연 빛깔의 액체로 고쳐 말하고, “애들 문제는 경찰에 직접 맡기는 등 현실에 순응하다 보면 우리의 교육은 바로 설까요?

 

웃음과 해학, 교육의 현주소로만 볼 수 없는 권혁소 시인의 중학교 선생이었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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