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일기

화분 두 개의 행복

불량아들 2020. 11. 30. 15:02

화분 두 개의 행복

 

아내와 집 근처 정릉천으로 산책을 나갔다.

정릉천은 옛 시골을 생각나게 하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정감이 가는 곳이다.

 

오늘은 정릉천을 따라가다 옆길로 샜는데, 산비탈을 타고 올망졸망 모여 있는 집들이 마치 70년대의 산동네를 연상케 한다. 옛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우리 부부는 풍광 구경에 바쁘다.

 

고개를 넘어 하산길에 이르는데 산 중턱에 허름한 집이 한 채 보인다. 집 뜰 감나무에는 붉은 감이 연등을 밝힌 것처럼 환하고 많은 꽃들이 집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눈길이 머무르지 않을 수 없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꽃을 좋아하나 봐요?” 60세 중반은 돼 보임직한 아주머니께서 손을 까불러 들어와 구경하고 가란다.

 

멈칫멈칫 하다가 성화(?)에 못 이기는 척하고 집에 들어서자 만발한 꽃들이 눈 호강을 시켜준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감사인사를 올리며 나오려는데, 작은 꽃 화분 두 개를 강권하듯 배낭 속에 넣어주는 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받아 나오며 아주머니의 후한 인심에 아내와 나는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서울에서 이런 인심을 어떻게 얻느냔 말이다.

 

우리 부부는 내가 잘 생겨서 그렇다”, “아니다 로 티격태격하면서 다음번엔 박카스 한 박스라도 놓고 오자고 의견을 모았었다.

 

집에 돌아와 화분에 물을 주고 거실 탁자 앞에 놓은 지 며칠,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렇게 멋진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코로나로 심란한 시절이지만 꽃은 또 피어 아름답게 세상을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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