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먼저 온 오후

불량아들 2021. 2. 1. 14:48

먼저 온 오후

 

태양이 긴 혀를 늘어뜨리는 오후다

적도의 늙은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다

황하의 장마가 비를 몰고 오는 오후다

햇볕이 꾸들꾸들 말라가고

바람이 포플러 잎사귀를 희롱하는 오후다

망치소리 끊긴 오후다

윤슬이 반짝이고

지친 개가 헐떡이는 오후다

토방 위의 개미가 안방으로 기어오는 오후다

 

신화 속의 거인들이

역사책의 활자를 잡아먹고

마침내 똬리 틀고 앉아 있는

오후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오전보다 먼저 온

오후다

 

<뷰티라이프> 2020년 9월호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골버스는 잘도 달린다  (0) 2021.02.01
빛은 어디서나 빛난다  (0) 2021.02.01
소쩍새 울다  (0) 2021.02.01
분수  (0) 2021.02.01
세상만사  (0)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