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넘기며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습니다
방안 가득
글자들의 수런거림
가슴이 떨려 옵니다
이런 정겨움을 왜 그토록 멀리 했던가
책상 한쪽 켠
우두커니 있는
달력을 봅니다
때로는 빨간 줄로, 검은 줄로
죽죽 그어져 있는 날짜를 헤아리며
1, 2월을
3, 4월을
7, 8월을
넘깁니다
날짜들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즐거운 추억
아픈 기억에
천천히
천천히
지나갑니다
넘어가는 달력을 보며
그대의 모습도 넘깁니다
찢어버리면 그 뿐인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촛불은 사그라지고
지나간 시간처럼
그대의 모습도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어이하면 새로운 달력마냥
그대도 다시 올까요
199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