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단골집

불량아들 2006. 9. 25. 10:51

대전에 다녀온 후로 계속되는 단골집 탐방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단골집만을 찾는 버릇이 있다.

 

방배동에 가면 <박씨 물고온 제비>, 충무로는 <품앗이>,

인사동은 <풍류사랑>,대학로는<작가폐업> 등등....

대학로 작가폐업만 빼고는 다들 막걸리나 동동주는 잘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씨 물고온 제비>에 가면 '이모"라고 부르는 주인장의 입담이 막걸리 맛만큼이나 구수하다.

아주 곁에 눌러 앉아 누가 객인지 주인인지 모르게 수다를 떤다.

 

<품앗이>는 인삼막걸리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옛 정취를 자아나게 하는 소품들도 인삼막걸리 맛 못지 않다.

이 집 '이모'는 눈이 어찌나 밝은지 내가 그 집에 당도하기 100미터 전부터 두 손을 들고 환영 나온다.

처음에는 보통 두셋이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대여섯 명 많게는 열 두엇까지 일행이 느는

나의 술 버릇을 일찌감치 파악한 후로는 아주 지정 자리까지 마련해 놓았다.

안주로 나오는 돼지김치찌게 맛이 일품이다.

인삼막걸리 맛에 취해 몇 번이나 구두를 바꿔 신고 왔었다.

 

인사동 <풍류사랑>은 말해 무엇하랴. 풍류사랑을 안 지 꽤 오랜 세월.

내가 만들어준 단골도 상당수에 이르리라.

그만큼 풍류사랑은 나에게 편안한 단골집이다.

 

지난 주 목요일엔 친구놈과 모처럼만에 풍류사랑에서 만났것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내가 여기 단골 만들어준 사람도 꽤 많을 것인디 

주인장께서 공로패라도 하나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싱겁게 한마디 했드만,

일행들 이구동성 "야야, 네 행패로 이 집 발 끊은 사람들 수 생각하면

출입금지 조치 안 당하는 것도 다행이여." 참나 본전도 못 찾았네.

 

<풍류사랑>의 별미는 '송엽주'와 다슬기로 만든 '고디술국'이다.

송엽주 그 좋은 맛에 현혹되어 주량 모르고 마셨다가 그야말로 필림이 끊긴 적이 몇 번이던가.

주인장과 맞대작하며 음풍농월할 수 있는 것은 보너스.

 

대학로 <작가폐업>은 행위예술하며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임경숙 씨가 운영하던

<크레아시옹>의 뒤를 이어, 소설 쓰는 주인장이 하는 운영하는 카페다.

 

<크레아시옹>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멋들어진 공간이었다.

모든 객들이 함께 춤 추고 노래하며 그야말로 난장을 벌였었다.

주인장과 연하의 남편도 우리 술판에선 동지였다.

지금은 수유리 산 밑에 자리잡고 불세출의 어린 시인과 교감하고 있다고...

 

<작가폐업>은 예전의 크레아시옹 분위기는 많이 퇴색했지만 

대학로에 가기만 하면 꼭 들르는 곳이다.

집과 가까운 관계로 주인장과도 종종 대작하면서  

밤 늦도록 마셔도 택시비가 절감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단골집은 아니지만 지난 토요일엔 수락산 기슭 개울가에 자리잡은 <충남집>이란 델 갔었다.

최영희 회장이 며칠 전부터 함께 한잔 하자고 벼르고 있던 터였다.

 

오후 5시, 가을날의 양광을 받은 밤나무가 알밤을 하나씩 '톡' '톡' 하사하고 있었다.

개울가 평상에서 바라보는 가을 하늘은 하도 맑고 맑아서 눈물이 주르르... 

왜 맑은 하늘은 눈물을 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경치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하루를 묵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아파트 앞의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내 마음도 하늘하늘.

네가 그리워 하늘하늘 하늘을 하늘하늘 본다.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겨?

 

     2006. 9. 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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