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반가운 손님

불량아들 2006. 10. 23. 17:29

어젯밤, 가을 비 오는 소리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싱숭생숭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 새벽에야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가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일어났다.

밤새 가을 비, 갈 바람이 낙엽을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듯 많이도 선물했다.

낙엽은 아마 갈 바람이 보내온 연서이리라.

아스팔트 위를 뒹구는 연서가 울긋불긋 앙증맞다.

 

주체 못할 마음을 안고 사무실에 나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블로그를 연다.

이틀 동안이나 컴퓨터를 열어보지 못했다.

몇 개의 댓글을 달고 교감 게시판에 가니 한나무 성이 서울에 온단다.

 

블로그에서 만나 유일하게 핸폰 번호를 주고받고 유일하게 처음 만나는 그다.

대한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마음이 떨린다.

 

용케도 나를 알아보는 한나무 성이다.

처음 보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

사진 올리기 등을 전화로 알려주었는데 기계치인 나는 아직도 그 방법을 모른다.

 

근처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살갑게 대하는 그가 반갑다.

나는 쑥스러움을 좀 타는 편이다.

그는 처음봄에도 사람을 편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블로그 얘기 끝에 주자천 님 이야기가 나온다.

한 번 만나고 싶었던 분이다.

그녀의 글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그녀와 잘 맞을 거라며 시청 앞에 있는 그녀의 '죽집'으로 무작정 간다.

국화꽃을 한다발 사서는 나보고 건네주란다.

나는 그런 짓(?) 못한다며 손사레를 친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는 명랑, 쾌활, 솔직, 건강하다.

글하고 똑 닮았다.

초면임에도 수다를 떨며 셋이서 지지고 볶는다.

얼굴과 마음에서 사람좋음이 뚝뚝 흘러넘친다.

 

그녀의 시집 <자반고등어를 굽다>와 수필집 <주자천의 죽 쑤며 사는 이야기>를 공짜로 얻는다.

횡재했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십 일을 술 먹는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한다.

그것도 시간, 장소 불문이라는 데에야.

일주일에 팔 일 술 마시는 나보다 얼마나 정감 있더냐. 고수 만났다.

 

한나무 성이 수원에 다시 내려가야 한단다.

나보고 더 있다 오란다.

마음속으로는 그러겠다고, 주자천 님께 술이라도 하러 가자고 조르고 싶었지만

초면에 그럴 수가 있나, 더구나 양반 체면에, 히히....

 

죽집을 나오니 막걸리 마시기 좋은 하늘색과 날씨.

그냥 나온 것을 후회하며 후회하며 이 글을 쓴다, 시방....

 

       2006. 10. 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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