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되는 술 잔치로 가을만 살찌어 간다.
술을 쪼까씩만 묵자고 다짐했던 때가 어제건만, 하~ 쉽지가 않다.
월요일 저녁엔 <품앗이>에서 인삼막걸리로 시작하여 <옵션>에서 맥주를,
병도네 집에까지 가서 유하며 매실주, 복분자를 축내고 말았다.
다음날엔 포천 조안리에 있는 운길산 '水鐘寺'에 올라
깊어가는 가을 단풍을 안주 삼아 조막걸리를 홀짝 거린다.
올 가을 산은 단풍보다는 죽어가는 나무들이 산을 점령하고 있다.
오랜 가뭄과 이상 고온 때문이란다.
그래도 아직 우리 산천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아, 가을 석양빛을 품으며 빛나는 들판의 황금 물결과,
끝까지 단풍되기를 거부하며 거부하며 버티고 있는 나뭇잎새들의 한 판 승부.
이제 저 나뭇잎들은 가을의 기운을 더는 이기지 못하고 화들짝 놀라 빨개지거나 노래지리라.
수요일, 사업 다각화를 핑계로 자문을 구하는 신조 사장님과
강남에서의 이틀 간의 술 잔치.
다음날, 정신을 곱게 차려 사무실로 나온다.
금요일, 서현선 씨한테서 또다시 전화가 온다.
문화일보홀에서 <놀부4인방>이란 연극을 한다고 진작에 기별이 왔었다.
오늘은 꼭 가마고 약속한다. 7시에 공연장 로비에서 보기로 한다.
저녁 8시 공연인데 그 시간이 다되어 밀리는 택시에서 내린다.
부랴부랴 공연장 입구로 들어가니 감독이 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서현선 씨는 물론 공연 준비 중이다.
홍희숙 원장과 맨 앞줄에 앉아서 배꼽을 잡고 관람한다.
<놀부4인방>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공연하는 '토리극'이다.
'토리극'은 우리 전통의 판소리나 마당놀이와 비슷한데
대사에 리듬과 율동을 넣어서 흥을 일궈낸다.
리듬과 율동을 따라하고 싶은 욕구가 들게 하는 묘미가 있다.
공연 후, 출연진 거개와 연출, 감독까지 무더기로 광화문 선술집으로 향한다.
연극쟁이들과 함께 하는 술판은 흥겹다.
주인장은 서현선 씨를 알아보고 반가워 하지만 안주 솜씨는 별로다.
밤이 익어 손님들은 다가고 우리들만 신났다.
토리극의 율동을 배운다는 핑계로 술판이 춤판이 되었다.
가을 단풍마냥 얼굴마다 단풍색들이 완연하다.
행복한 술판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그 행복한 술판은 막을 내렸다.
광화문, 은행잎이 떨어지는 길가에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작별들을 고한다.
연출자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연극이 끝나는 11월 19일까지
매일매일 공연장으로 출근하기로 말이다. 헤~~ 술김에 무슨 말을 못하랴...
2006. 10. 30.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