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준 정 뺏지 않기

불량아들 2008. 8. 20. 18:27

준 정 뺏지 않기

 

기자가 미용계에서 어슬렁거린 지 십여 년이 넘다 보니 이런 저런 부탁과 자문을 많이 받습니다.

며칠 전에는 미용계에 신제품을 개발해서 유통하고 있는 어느 분의 하소연을 주야장창 들어야 했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미용계를 난도질하는 그 분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불신과 무지가 우리 삶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가에 대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기자는 마지막에 딱 한 말씀 올렸습니다.

“지금 미용계에 입문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일 년이 조금 넘었다고 상대방은 대답했습니다.

“3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미용계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마십시오. 3년이 지나야만 길이 보일 것입니다.”

의아해하는 그 분께 조금만 더 노력해보라는 말로 긴 시간의 자문을 끝마무리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미용, 특히 기술을 중시하는 미용계는

봉건적이며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봉건적, 폐쇄적이라는 것이 결코 나쁜 점만을 내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근저에 깔려 있을 테니까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용계의 배타성만을 부각시키며 불신하는 것은

자기 발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미용계의 원로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인사드리기 무섭게 손부터 매만지며 진정으로 건강 걱정,

사업 걱정부터 해주시는 마음 씀씀이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미용인만큼 의리와 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입니다.

특히 1세대에 가까운 미용인일수록 그 정의 강도와 깊이는 더합니다.

마치 아들내미 대하듯 하는 그 보살핌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리오.

그런 미용인들이기에 기자는 미용계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이 마음 편하고 뿌듯합니다.

 

기자 나름대로도 미용계를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디 그게

주춧돌을 밭쳐 주고 있는 한 알의 흙부스러기에 미치기나 하랴.

 

빈 수레에서 소리가 크게 나고 선무당이 사람 잡듯 미용계를 잘 알지 못하면서

그릇된 편견으로 미용인들을 도마질하는 그런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끄적거려 봅니다.

하기사 그런 분들도 결국에는 미용계의 일원이 되겠지요. 지나온 날의 잘못된 편견을 반성하면서...

 

저녁 한 끼 하면서 상의해야 할 일이 있다고 아는 원장의 전화가 옵니다.

다음에 하자면 삐치실 분입니다.

설사 시시껄렁한 얘기라도 부침성 있게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십 년 넘게 미용계를 어슬렁거리며 살아온 기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취하지 않게 술 마시며 얘기해야지, 기자는 속으로 다짐하며 웃습니다.

미용계에서 미용계 기자로 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면 우둔하다고 해야 맞겠지요?

 

아침 햇살이 이제는 완연한 가을색입니다.

정을 빨리 주지는 않지만 한 번 준 정을 빼앗지도 않는 미용인들이 있기에 계절은,

세월은 더 찬연한 것 같습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쿠알라룸푸르에게

 

술을 마신다

세 잔 두 잔 한 잔

 

켜켜이

쌓여가는 네 생각

 

달래며 달래며

막걸리를 마신다

한 병 세 병 두 병

 

여름 한낮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네 그리움도 그렇게 오고

 

동지섣달 긴긴 밤

내려 쌓이는 눈처럼

네 생각도 그렇게 쌓이는데

 

언제나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처럼

오늘 술로도 풀지 못하는

쿠알라룸푸르 네 생각이여, 네 그리움이여

 

<뷰티라이프>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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