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세월이 하 수상하니...

불량아들 2010. 3. 24. 11:45

세월이 하 수상하니...

 

풍경 하나

공초 오상순은 우리 문학사에서 허무의 세계를 노래한 대시인이다.

우리에게는 <폐허>라는 동인지로, 하루 담배를 180여 개비 이상 피웠다는 사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루는 공초의 문우들에게 부고가 왔다.

그의 딸이 죽었다는 부고였다.

일생을 혼자 몸으로 살았으며 혈육 한 점 남기지 않았다고 여긴 그에게서 온 부고를 보고 문우들은 놀랐다.

그러나 친구들은 ‘이런, 공초가 그간 감추어둔 자식이 있었구나. 신통방통한 일이야.’

여기며 호기심을 가지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목 놓아 울고 있는 공초를 보며 친구들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위로했다.

드디어 입관 의식이 진행될 때 너무도 작은 관을 보고 친구 중의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가 몇살이길래?”

그러자 공초는 슬픔이 가득차서 눈물을 잔뜩 머금은 눈을 들고

“응, 자식처럼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거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 장례식을 계속했다.

 

풍경 둘

어느 날, 글 깨나 읽었다는 선비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선비가 가만히 보니 노를 젓는 사공의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글과 세상 물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무식쟁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봐라, 너는 논어를 아느냐?” 선비가 묻자

“논어가 무엇입니까? 먹는 것입니까, 입는 것입니까?” 사공이 답했다.

선비는 기가 막혔다. “너는 반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구나. 그렇다면 맹자는 아느냐?”

“맹자요? 첨 듣는 말인데요.” 무식한 사공이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살아는 있으되 죽은 것과 같다. 어찌 논어와 맹자를 모르고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근엄하게 선비가 말했다.

“그렇다면 선비님은 헤엄을 칠 줄 아십니까?”

“헤엄은 쳐서 무엇하게. 난 그딴 건 모른다.”

“그렇다면 선비님은 반은 죽은 목숨입니다.”

“아니 어째서?”

“저는 지금 배를 뒤집어엎을 예정이니까요.”

사공이 이렇게 말하고 배를 물에 뒤집고 헤엄을 쳐서 나가자 선비가 그때서야

“내가 잘못 했소. 다시는 깔보는 소리를 하지 않을 테니 나 좀 살려주소.” 애원하는 것이었다.

 

공초의 고양이 장례나 선비의 이야기는 모든 것에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들은 나름의 존재성과 고귀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가 부산의 여중생 살해와 같은 엽기적이고 소름 끼치는 사건을 마주하고 있고

4대강 사업이니 세종시 문제니 자기만 잘났다고 무리지어서 핏대 세우는 세력들을 보면서

공초의 일화가 생각나고 유식한 선비가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 때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해봅니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코끝까지 다가온 봄, 화사한 햇살 가득하기를 빌어봅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상가에서

 

상가입니다

영정을 보며 절을 두 번 합니다

상주와는 절을 한 번 합니다

상주에게도 절을 두 번 하고 싶습니다

 

즐비한 꽃들을 보며 망자를 생각합니다

입구부터 현란한 꽃들을 보며 상주를 생각합니다

저 꽃들은 망자를 즐겁게 하겠지요?

아니 상주를 더 즐겁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즐거움 하나를 더했습니다

 

육개장을 먹으며 망자를 얘기합니다

커다란 은덕을 얘기합니다

술 취한 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망자를 위해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이승에서 여기 모든 눈에 거슬리는 것들 거두어 가시라고

얼굴도 모르는 망자를 향해 신나게 춤을 춥니다

초상집에서

 

<뷰티라이프 201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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