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며...
참 좋은 날들의 연속입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은 우리 마음도 달뜨게 합니다.
세상이 꽃 보기 같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꽃꽃꽃 4월 세상은 온통 꽃 천지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른 봄에 피는 꽃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개나리가 그렇고 진달래, 벚꽃이 그렇습니다. 목련까지도....
있다 하더라도 미미합니다.
입하가 지나고 나서야 꽃망울을 터뜨리는 라일락이라던지 아카시아에서는 얼마나 향기가 진하던가요?
이는 호(好) 불호(不好)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사는 이치가 꽃 향기에도 있다는 깨달음을 하나 얻습니다.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고 예쁜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알려야 하는데
언제 향내까지 갖출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이른 봄에 피는 꽃들에게 향기가 없다고 나무라지 맙시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언 마음을 달래주지 않습니까!
지금도 향기 없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세상을 환하게 하고 있는 저 꽃들의 향연에 박수를 보냅시다.
꽃 얘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시골 출신인 기자는 할미꽃을 무척 좋아합니다.
어릴 적 뒷동산에 올라 묘똥에 함초롬히 피어 있는 할미꽃을 보며 경탄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시골의 산소에는 할미꽃이 한 송이씩만 피었습니다.
할미꽃을 보러 산에 오르는 일이 많았지요.
뒷산에서 보는 할미꽃은 색깔이며 자태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전방 교육을 갔다가 묘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할미꽃을 보며
옛 시절의 감회가 많이 퇴색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기자는 할미꽃을
제일 좋아하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한여름에 자주 볼 수 있는 꽃으로는 나리꽃이 있지요.
낮은 산, 저녁 무렵 소에게 풀을 뜯기다가 자주 볼 수 있는 꽃이었는데
나리꽃은 왠지 모를 수줍음과 고귀함을 같이 품고 있었습니다.
꺾어본다거나 캐어 가져갈 생각을 아예 못 하게 하는 꽃이었지요.
산과 어울려 있다는 것 자체가 황홀함을 주는 꽃이었달까요.
감꽃도 잊을 수 없는 꽃입니다.
앞마당과 뒤뜰에 한 그루씩 있었고, 동네 골목마다에서 볼 수 있는 나무가 감나무인데
감꽃이 떨어지면 실에 매달아 말려서 간식거리로 먹기도 했습니다.
감꽃 하나 하나를 줍는 기분, 진정 행복이었지요.
그 맛, 물어보면 잔소리지요.
감나무 잎은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할 때 차비로 받기도 했지요. 생각나시지요?
햇볕 찬연한 가을날, 신작로 옆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등, 하교길을 신나게 만들어주었지요.
우리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토요일마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 마을별로 모여서
교장 선생님 훈시를 듣고 먼 부락부터 줄을 맞춰서 하교길에 나섰지요.
월요일이나 수요일 등 여타 아침 훈시 때는 학년별로 모였는데 토요일 하교시에는 마을별로 모였었습니다. 그때 교장선생님 훈시는 왜 그렇게 길었는지요.
학교 정문에서 몇 미터쯤 줄을 맞춰나갔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작로 길을 무작정 뛰었지요.
그때 신작로 양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코스모스들은 갓 시집 온 새색시마냥 예뻤습니다.
코스모스 꽃잎 몇 개를 따기도 하고 헛발질도 하면서 초등학생 시절은 그렇게 익어갔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달맞이꽃, 봉선화, 구절초, 달밤에 보는 이화꽃 얘기도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봄꽃들을 보며 지난날의 회상에 잠겨봤습니다.
세상이 꽃 보기 같기만 하기를 다시 한 번 소원해봅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할미꽃
버리시어
자지러지더라도
온 세상
한마음일란다
따를란다
바위처럼
구름처럼
할배 묘똥 옆
흐드러진
<뷰티라이프> 2011.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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