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잊고 사는 것

불량아들 2014. 12. 18. 15:45

잊고 사는 것

 

두 달 전부터 잡은 저녁 약속이 있던 날 아침,

허리 끊어지는 아픔으로

119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간 날,

긴 주사를 맞고 한잠 끝에 문자를 한다

-그대들은 허리 아프지 않아서 좋겠네

 

부모님 팔순 잔치를

화창하게 치른 친구에게 한 마디

-두 분 다 살아 계셔서 무지 좋겠네

 

저녁을 먹고

뱃살이 무서운 아내와 동네 한 바퀴

세 해 전에 아내 잃고

혼자 사는 이웃집 형님

-예쁜 아내랑 함께 해서 좋겠다

혼잣말 하네

 

대문 나서자

가을 햇살 아래

찬란하게 말라가는 빨간 고추

마치 햇볕 없이 제 스스로를 뒤집어

때깔 좋게 마른다는 듯

 

<뷰티라이프>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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