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이 만난 미용계를 이끄는 사람

이완근이 만난 미용계를 이끄는 사람들-화미주 김영기 대표 편-

불량아들 2017. 4. 26. 13:20

이완근이 만난 미용계를 이끄는 사람들9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내고 있는 화미주 김영기 대표

 

<이완근이 만난 미용계를 이끄는 사람들>이란 타이틀로 매달 우리 미용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미용인 한 분씩을 집중 인터뷰합니다. 기존의 미용인께는 성공에 대한 성취감을, 미용을 배우고자 하는 꿈나무들에게는 희망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호에는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내고 있는 화미주헤어의 김영기 대표를 싣습니다

 

                    <이완근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화미주헤어를 이끌고 있는 김영기 대표를 만난 때는 각종 꽃들이 만발하고 신록이 그 신선함을 자랑하는 4월 중순이었다. 서울에서 강의가 있어 올라왔다가 잠시 짬을 내었다. 그날도 몇 번의 미팅이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책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가 인기를 끌면서 각종 강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계절에 좋은 사람과 만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이완근 예전에 대한미용사회중앙회 최영희 회장님으로부터 대표님의 <천만 원의 약속>이라는 단행본을 소개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표님의 생이 궁금합니다.

김영기 17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소년가장이 되었습니다. 힘겨운 가난에 암 투병하시던 아버지는 약도 제대로 못 써 보시고 세상을 떠나셨지요. 이처럼 돈이 없어선 어머니마저 잃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고 10년 안에 1천만 원을 모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천만 원은 그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돈이었습니다. 연필로 집안 벽면이 새까매지도록 꿈을 꾹꾹 눌러썼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약속했지요. 그런데 친구들은 비웃었습니다. 그 당시 월급이 5,000원이었으니 5,000원을 16년 동안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야 1,000만원이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결국 저는 천만 원을 모았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고난의 행군이었죠. 냉동업체와 신발, 농기구판매상, 블랙박스 커피숍 등등 30개가 넘는 직업을 거쳤습니다. 블랙박스 커피숍을 운영할 때였습니다. 이때 제 사업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한 청년이 직원 안 구하냐며 커피숍으로 들어왔습니다. 있던 직원도 내보내야할 참이었는데, 어떻게 일하겠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무조건 재미있게 일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다음 날 그 말이 계속 생각나 채용을 했지요. 근데 이 직원은 무료음료 쿠폰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공중전화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동전을 쌓아뒀습니다. 거리에 나가 젊은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지요. 그래야 남성고객들이 온다고 말했지요. 손님이 자리에 오래 있어도 민망할 정도의 무료서비스를 해줬습니다. 매출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장사는 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삐삐 전화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국장님도 생각나지요? 블랙박스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면 무조건 거기서 봐야했던 시절. 줄 세워서 커피 팔았습니다.

이완근 잘되던 커피사업을 그만두고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신 건가요.

김영기 블랙박스 커피숍을 할 때인 커피숍에 미용실 직원 분들이 많이 놀러왔지요. 하루는 미용실 원장님이 김 사장 커피 팔아서 얼마 벌어?’ 라고 묻길래 한 달에 100만원 번다고 신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미용실 원장님 하는 말이 퍼머는 하루에 100만원도 번다는 겁니다. 그 때 미용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미용실로 뛰어 들었습니다. 1986년의 일이지요.

이완근 화미주란 상호가 독특한데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김영기 맨 처음 미용 사업에 뛰어든 게 앞서 말했듯이 1986년 미용실 총무 역이었습니다. 총무로 들어가자마자 간판을 바꾸자고 주인에게 강력히 건의했지요. 그 당시 미용실 상호가 파리미용실이었습니다. 국어순화운동이 펼쳐지고 있었고 '파리'라는 명칭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죠. 이름 그대로 미용실이 파리를 날리고 있어서였습니다. ‘오양수산'을 지은 유명한 작명가에게 부탁했죠. 화미주(和美州)라는 멋진 상호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작명비가 단 세자에 600만 원. 원장님께 혼쭐이 났지만 이미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작명 당시 화미주 작명가가 신신당부했죠. 10년 후에 고을 주()를 대륙 주()로 바꾸면 부산에서 1등 미용실이 될 거라고. 예언은 적중했습니다. 새 간판을 달자마자 매출이 매년 50% 이상 늘어났죠. 물론 서비스를 대폭 업그레이드시키고, 불철주야 고객 사랑을 실천한 게 뒷받침됐지만 말입니다.

 

이완근 상호 말고 다른 성공 요인이 있을 것 같은데요.

김영기 국내 최초로 마일리지 적립제도를 실시했고, 윤기 나는 생머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명 '코팅 퍼머'를 전국적으로 유행시켰습니다. 머리스타일을 미리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도 처음으로 도입했지요. 고객에게 '사랑합니다'란 인사말을 시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도제식 교육에서 탈피해 아카데미를 열었고, 화미주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영어 교육을 일찌감치 시작했습니다. '미용고시'로 통하는 자체 디자이너 승격시험도 만들었죠. ‘시험에 떨어지는 건 실수이나 그렇다고 그만두는 건 실패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했습니다.’

또 한 가지 '250명의 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가 고안했는데 혁명적인 세일즈 전략입니다. 대부분 모임의 참석자가 대략 250명인데 다른 모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그래서 한 사람이 갖는 인간관계 범위가 250명 선이라는 결론입니다. 여기서 나온 게 '키맨제도'라는 것으로 고객을 소개해주면 리베이트를 주는 판매 전략입니다. 본인이 직접 뛰지 않고도 거미줄 같은 인맥을 통해 손쉽게 윈윈하는 장점이 있죠.

키맨제도를 화미주에 벤치마킹해 재미를 톡톡히 봤습니다. 50%를 할인해주는 연간회원제를 운영하면서 무려 7만 명을 모집했고 100억 원을 훌쩍 넘는 매출효과를 봤습니다.

 

(김영기 대표는 자신의 목표를 꼭 메모한다. '2010년 현재 미용실 18, 10년 뒤 60곳으로.', '2014년 부산 미용시장 점유율 10%, 202015% 달성.', '2020년까지 광복동에 연면적 1500평 크기의 미용타운 건립, 화미주장학회 설립.' -이 다짐들은 2009124일 그의 메모장에 이렇게 작성돼 있다.)

 

이완근 화미주가 성장을 계속해오고 있는데 현황과 자랑을 한다면.

김영기 화미주는 부산, 울산, 경남 일대에 43개 미용실과, 동고동락하는 가족들이 800명이 넘습니다. 미용실뿐만 아니라 미용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닦고 있지요. 현재 화미주헤어는 헤어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코시오’, 교육기관인 뷰티스쿨G’, ‘화미주 연수원’, 벤처기업 화미주 ITC’, 세컨브랜드 화미주아티클등의 자회사를 운영 중입니다.

화미주의 장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교육입니다. ‘화미주 헤어의 모토는 바로 교육이다.’ 화미주 자체 아카데미와 화미주 연수원을 통해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인 헤어 디자이너를 배출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비롯됐습니다.

화미주 인들은 화미주 아카데미를 통해서 단계적인 교육을 거친 후 실전에 배치합니다. 연간 154시간 이상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길러진 고급 미용인재들은 현장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지요.

또한 아카데미에서는 기술과 인성, 교양, 서비스, 마케팅은 물론 글로벌 디자이너 육성을 위해 원어민강사를 직접 초빙해 영어수업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1년간 화미주 아카데미에 투자되는 교육비만 약 3억 원 에 달할 정도입니다. 많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화미주 아카데미를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는 사람이 경쟁력이다.”라는 신념 때문입니다.

며칠 전, BSC 37기 디자이너 승격시험이 치러줬습니다. 화미주 연수원에서 숙박하면서 다들 새벽까지 연습했죠. 파트너들의 2년간의 인고가 다 담겨 있는 시간이니까요. 사실 화미주의 디자이너 승격 시험은 철저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미용고시라고 불릴 정도로 혹독한 교육과정과 시험으로 인해 파트너들의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미주의 각 교육과정은 크게 세 가지의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기술교육이며 그 외에 서비스 교육과 제가 직접 실시하는 인성교육도 포함됩니다.

레벨 1, 2, 3, 4를 통과하면 스타일리스트와 시니어 스타일리스트 단계를 거쳐 헤드 스타일리스트의 경력을 쌓을 경우 관리자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는 5년 이상의 철저한 교육과정과 단계별로 더욱 심화된 매 시험에 통과한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자격이기도 합니다.

 

이완근 좋은 일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김영기 화미주 연수원 오픈을 18일에 합니다. 저는 32년 미용실 운영을 하면서 제일 많이 교육 받은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교육을 받아야지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육 받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 교육을 화미주 연수원에서 계속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2번째로 출판된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의 출판 기념회도 이날 같이 합니다. 책을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책에 제가 성공했던 비결을 모두 담았습니다. 이 책 보고 다들 힘든 이 시기에 살아남을 정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의 출판으로 미용인들, 소상공인,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가 엄청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 강연을 잘해서 한명이라도 운명을 바꾸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에 화미주미용경영이야기를 운영 중입니다. 여기에는 매주 1회씩 미용경영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365개를 올리고 세 번째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완근 대표님 하면 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김영기 처음 <천만 원의 약속>을 쓰게 된 배경은 1990년대 말 스타강사 조태훈 씨의 철가방 스토리를 듣고 나도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2000년대 중반 박형미 님의 <벼랑 끝에 나를 세워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2005년 스티븐 코비박사의 7가지 습관을 공부하면서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천만 원의 약속>17세에 시작한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40세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제 삶의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그 책이 나오기 이전의 화미주는 지방 브랜드에 불과했죠. 하지만 그 책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저와 화미주를 알렸습니다. 그때 10년 안에 또 한 권의 책을 낼 것이라고 다짐하였고 이번에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란 책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31년 전 미용을 시작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미용 기술이나 지식 없이 미용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지식 없이 총무를 맡았죠. 총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뿐더러 미용 지식도 없었습니다. 곧바로 직원들에게 고객과 눈을 맞춰라, 항상 미소 지어라 등의 교육을 했습니다. 당시 미용 서비스 도서는 전무했고 교육 자료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보험, 화장품 판매, 자동차 세일즈 책 등을 인용해 교육을 시도했지요.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는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진 실장, 원장들에게 조회 교육 자료집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테마별로 나누어 직원들을 교육시키기에 알맞은 내용으로 구성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교육만 하면 분명 살롱에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는 현재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하는 것처럼 시대에 맞는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이완근 성격이 무척 쾌활하신 것 같습니다.

김영기 요즘 사람들을 만날 때 자주 질문합니다. ‘출근할 때 무슨 생각했습니까?’, ‘오늘 저 만나러 올 때 무슨 생각하셨습니까?’, ‘하하하 저 만난다고 설레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설렜습니다.’

오늘 마침 서울에 오전 강연이 있었습니다. SRT를 타고 오면서 어떻게 강연을 할까?’ ‘어떤 내용을 강조해서 어떻게 교육을 더 잘 전달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일하러 나온 사람은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에 반해 돈 벌러 나온 사람은 오늘은 어떻게 일을 할까?’하며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일하러 나온 사람은 사무적으로 대할 것이고 돈 벌러 나온 사람은 창의적으로 대할 것이니까요. 지금 당장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확연하게 많은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일하러 나온 사람은 그저 일을 하겠지만 돈 벌러 나온 사람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니까요. 이 차이가 운명을 바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즐겁게 일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완근 살아오면서 많은 삶의 지혜를 체험했을 것 같은데.

김영기 생각한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디봐라’, 2005년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투자한 것과 빌려준 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저의 좌우명은 단디 봐라로 바꿨습니다.

일신 일일신 우일신’, 2010년 초 중국에서 좌우명으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일신 일일신 우일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봤더니 매일매일 변하고 또 변해라.’란 말이었습니다. 혁신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드리려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사업이 커지면 걱정도 점점 많아집니다. ‘100가지 걱정 중 8개만 해결 가능하고 92개는 해결 불가능한 걱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걱정을 적어봤더니 정말 해결 못 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하게 생활하고 미래를 향한 방향성을 잡는 것, 비전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생활하는 것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지혜인 것 같습니다

 

이완근 요즘 미용계가 어렵다고 합니다. 한 말씀해주신다면.

김영기 미용인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인 권익보호가 가장 시급합니다. 대기업에서 미용사업에 들어오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몇 차례 그런 바람이 있었지요. 우리의 권익보호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미용인의 권익, 미용인 스스로가 지켜야합니다. 미용인들이 더 행복하고, 더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영기 대표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타인에게 전달해주는 힘을 그는 분명 지니고 있다. 이 긍정의 힘이 우리 미용계 곳곳에 번져 활력 넘치는 곳으로 변하리라 믿는다.

 

*화미주헤어*

부산, 울산, 경남 대표 미용실, 친환경 에코살롱

198387평 규모 종업원 12명으로 파리미용실 광복동 오픈

1986년 화미주 미용실로 상호 변경

2003년 모니터링 시스템, 화미주 아카데미 104평 오픈

2006년 화미주 미용경영 에세이 <천만 원의 약속> 출간

2008년 잠재혁신형 중소기업 선정(중소기업청)광복본점 확장 오픈(497)

2011뷰티스쿨G’ 화미주 지정 아카데미 개원

2012년 코시오 인터내셔날 물류사업부 설립

2013년 미용시장 한국 최초 ERP 시스템 도입

2016년 화미주 사옥&연수원 오픈, 화미주 ITC벤처기업 설립

2017년 화미주아티클 세컨드 브랜드 오픈,

화미주 미용 경영 스토리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 출간

 

*김영기 대표*

43개 지점, 800여 명 직원 화미주 인터내셔날 대표,

페이스북 페이지 화미주미용경영 이야기 운영

1986년 화미주 미용실 입실 총무

1992년 화미주 미용실 지분사장

1994년 화미주 미용실 대표

2002년 화미주 아카데미 오픈

2006<천만 원의 약속> 저술

2010 화미주 지정 아카데미 뷰티스쿨G’ 오픈

2012 코시오 인터내셔날 물류사업부 설립

2016 화미주 사옥&연수원 설립

화미주 ITC벤처기업 설립

2017년 화미주아티클 세컨드 브랜드 오픈

<간절함으로 운명을 이겨라> 저술

 

   <뷰티라이프> 2017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