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저녁에

불량아들 2017. 8. 16. 12:42

저녁에

 

아파트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저녁일수록 더욱 빛난다

건조한 텔레비전 뉴스가 흑백으로 바뀐다

생각도 바뀌는 저녁

 

저녁은 푸르르게 왔다

저녁은 바람이 없어도 왔다

저녁은 무논 개구리 울음소리와 함께 왔다

 

호롱불을 밝히면 어둠은 사그라지고

외양간의 누렁이는 잠을 청하지 못했다

설강에서는 쥐 몇 마리 소쿠리를 떨어뜨리고

닭장 속의 닭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분주했다

주변을 배회하는 붉은 눈동자

 

몇 번의 기침소리와

능소화, 바람에 몇 개 낙화할 때

옆집 대문 닫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사랑방에선

쥐며느리 서너 마리 방바닥을 기어다녔고

아버지는 뭉뚝한 손바닥에 침을 뱉어가며 산내끼를 꼬고 계셨다

 

어머니의 부엌문이 닫히고

매급시 사립문이 서너 번 흔들리고 나서야

어둠이 어둠답게 내려앉았다

 

고요가 평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저녁에


<뷰티라이프>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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