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어머니를 버리다-정병근-

불량아들 2018. 1. 29. 12:30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5)

어머니를 버리다

정병근(1962~ )

 

풍 맞은 어머니가 밥을 드신다

안간힘으로, 왼쪽으로 오므려 씹는 만큼

오른쪽으로 밥알이 몰린다

오그랑오그랑 로봇처럼 밥을 씹는다

넘어가는 밥보다 흘리는 밥이 더 많다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넙죽넙죽 잘도 받아 먹는다 우리 어머니

꼭꼭 씹어라 꼭꼭 씹어

풍 맞은 어머니 말이......된다

밥은 묵었나 밥은 묵었나

전화 속의 목소리 이젠 들을 수 없다

살아서 밥밖에 할 줄 모른 어머니

줄 거라고는 밥밖에 없던 어머니

다시는 밥할 일 없다

밥 한 채 다 날리고 심심한 어머니

하루종일 누워있는 어머니

남자들에게 슬슬 버려지는 어머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55번째 시는 정병근 시인의 어머니를 버리다입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는 전화하실 때마다 밥은 먹었니?’라고 우선적으로 물으십니다. 참 객쩍은 말이다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필자가 호주에 유학 가 있는 딸내미한테 전화하면서 맨 먼저 묻는 말이 밥 먹었니?’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밥은 그만큼 중요하고 밥을 먹는다는 것 또한 성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풍 맞은 어머니가 밥을 드시는데 넘어가는 밥보다 흘리는 밥이 더 많습니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 옆에서 밥을 떠주고 있나 봅니다. ‘넙죽넙죽 잘도 받아 먹는어머니는 시인이 어렸을 때 밥을 떠주시며 꼭꼭 씹어라 꼭꼭 씹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살아서 밥밖에 할 줄 모른 어머니/ 줄 거라고는 밥밖에 없던 어머니’, 자식 사랑밖에 모르셨을 어머니가 풍을 맞았으니 아들은 그게 말이......된다고 부정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시인은 심심한 어머니’, ‘누워있는 어머니’, ‘버려지는 어머니를 담담히 바라봅니다. 여기서 말이......된다는 중의적으로 읽힙니다. 아들 사랑만큼 어머니 사랑이 가득합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그러나 그런 질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디에 계시건 시인은 밥은 먹고 다니고 밥을 먹을 땐 꼭꼭 씹어 먹으라는 어머니 얘기를 잊지 않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런 따뜻한 시를 쓸 수 있으니까요.

 

시인은 어쩌면 부모의 사랑이 일궈낸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8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