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프리미어 리그-박상천-

불량아들 2018. 2. 23. 15:08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6)

프리미어 리그

박상천(1955~ )

 

프리미어 리그 시즌이면

식구들 모두 잠든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거실에 혼자 앉아

텔레비전 중계를 보며 즐거워하던 당신,

잠이 많던 당신이

자지 않고 축구경기를 보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당신이 있을 땐 간혹 옆에서 얻어보고

밖에 나가선 아는 척도 했지만

당신이 떠난 후

지금까지 프리미어 리그건 유럽 챔피언스 리그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캘린더는

아직 20127월인 채 안방에 걸려 있지만,

프리미어 리그도, 유럽 챔피언스 리그도

내 일상에선 사라져버렸다.

 

오늘 새벽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프리미어 리그를 보았다.

중계를 보며 열심히 코치를 하거나

나에게 설명을 해주던

당신 목소리는 무음.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56번째 시는 박상천 시인의 프리미어 리그입니다.

 

무언가 몹시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몹시 보고 싶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 대상이 이 세상에서 다시 못 만날 사람이라면 그 그리움의 깊이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움은 마치 허기와 같아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불쑥불쑥 찾아옵니다. 시나브로 홍역을 치르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채무겠지요.

 

지금은 프리미어 시즌입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일방적으로 점수 차를 벌리며 앞서나가고 있지만 필자는 어젯밤 맨유의 경기를 혼자 시청했습니다. 축구에 대해 관심이 적은 아내는 처음엔 필자를 생각하기라도 하듯 몇 번 같이 프리미어 경기를 보더니만 이제는 시들해졌는지 살그머니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입니다.

 

시인의 아내도 프리미어 경기를 즐겼나봅니다. “잠이 많던시인의 아내가 자지 않고 축구경기를 보는 것이/ 참 신기했던 시인은 오늘 새벽”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프리미어 리그를 보게 됩니다. 살아 생전 중계를 보며 열심히 코치를 하거나” “설명을 해주던아내는 지금 곁에 없습니다. 하여 “20127이후 프리미어 리그도, 유럽 챔피언스 리그도시인의 일상에서 사라져버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내가 좋아했던 프리미어 리그가 오늘 새벽에 다시 아내를 부활하게 합니다.

 

사랑은 이다지도 지독한 놈입니다. 그 사람 손끝 하나하나, 그의 발자취 하나하나가 어느 매개체가 기름을 부으면 그리움이 되어 되살아납니다. 마치 분기탱천한 봉숭아 씨앗이 고양이 울음소리보다 가냘픈 바람에 목 놓아 씨앗을 퍼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비견될 바도 못됩니다. “무음으로 다가오는 그리움만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게 합니다.

 

그 어떤 힘으로도 아름답고 질긴 사랑을 잊게 할 순 없나 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