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목련꽃 필 때 너는 뭐 했니-유재복-

불량아들 2018. 5. 4. 12:32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8)


목련꽃 필 때 너는 뭐 했니

유재복(1963~ )

 

목련꽃 피었다

 

가진 것 없는 살림에

뿌리 근처 덜 녹은 얼음 조각, 오후의 햇살 조금, 겨울바람에 목 감겨 잡혀간 어린 봄바람, 겨우내 말라비틀어진 개똥 한 덩이, 얼어붙어 땅에 박힌 낙엽 몇 장, 무수히 서성이던 뒷집 노인의 덜 지워진 발자국 몇 개

 

없는 살림에 장만한 집이 어쩜 이리 크고 환할까?

 

얼어붙어 으깨진 씨앗 몇 개

납작해져 알아볼 수도 없게 된 메모

 

어느새 목련꽃 피었다

비어 있던 마음에 안개만 가득 찼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58번째 시는 유재복 시인의 목련꽃 필 때 너는 뭐 했니입니다.

 

꽃만큼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존재는 아마 드물 것입니다. 더구나 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봄에 일찍 피는 꽃은 인고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더 환하고 밝게 다가옵니다.

 

이른 봄, 목련꽃이 가진 것 없는 살림에도 환하게 피었습니다. 왜 가진 것이 없겠습니까, ‘덜 녹은 얼음 조각’, ‘햇살 조금’, ‘어린 봄바람’, ‘개똥 한 덩이’, ‘땅에 박힌 낙엽 몇 장’, ‘뒷집 노인의 덜 지워진 발자국 몇 개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목련이 개화하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그러니 크고 환할수밖에요.

 

며칠 전 의기투합한 몇이 모여 술추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꽃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봄이 간다고 하소연합니다. 정말 꽃들은 빨리도 왔다가 급하게도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오해인지 모르겠습니다. 꽃들은 그 환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겨울 동안 얼마나 많은 힘을 비축했었을까요. 응축한 힘을 한꺼번에 쏟고 나니 오랫동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어느새 목련꽃 피었습니다. 그러나 해찰 한 번 하고 나니 목련꽃은 가고 비어 있는 마음에 안개만 가득찼습니다. 가만 생각해봅니다. ‘목련꽃 필 때나는 무엇을 했을까, 봄에 어떤 희망을 주었을까.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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