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호박 오가리-복효근-

불량아들 2018. 6. 25. 11:56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60)

호박 오가리

복효근(1962~ )

 

여든일곱 그러니까 작년에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

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

벌레가 반 넘게 먹었다

벌레 똥 수북하고

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벌레가 남긴 그것을

물에 불려 조물조물 낱낱이 씻어

들깻물 받아 다진 마늘 넣고

짜글짜글 졸였다

꼬소름하고 들큰하고 보드라운 이것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 드리자

그러면

벌레랑 나눠 먹은 것도 칭찬하시며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60번째 시는 복효근 시인의 호박 오가리입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소리는 많이 있겠습니다만, ‘어린아이 글 읽는 소리,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자식 입속에서 음식 씹히는 소리3대 아름다운 소리라고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지막 소리가 제일일 것 같습니다. 요즘에야 먹을 것이 지천으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음식이 소중했던 옛날에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나저나 오가리는 생소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무나 호박 따위의 살을 길게 오리거나 썰어서 말린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예전에는 땡감을 깎아 널어놓았다가 말려 겨우내 간식거리로 삼았으며, 감꽃도 주어다 말려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앞산, 뒷산의 진달래꽃을 따먹거나 들판의 삐비도 많이 뽑아먹었지요. 아카시아 꽃도 훌륭한 간식거리였습니다.

 

이런 것들로 배를 채웠으니 어머니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여든일곱연세에도 아들을 위해 말려주신 호박고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아들은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비닐봉지에 매달아놨습니다. ‘벌레가 반 넘게 먹어서 벌레 똥 수북하고/ 나방이 분분하게 생긴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어머니께서 보내신 호박고지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고 깨닫습니다. 그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며 정성에 다름 아닙니다. ‘벌레가 남긴 그것물에 불려 조물조물 낱낱이 씻어’, ‘짜글짜글 졸였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안심을 합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라도 알았으니까요. 더구나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드리니 독자들까지 행복합니다.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떠는 아들에게 와서는 혈육의 따뜻한 정을 다시금 상기합니다.

 

이렇듯 일상을 다룬 쉬운 시(?)는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벅찬 감동을 줍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아들과 딸을 위해 콩을 거두고 계시거나 호박을 따고 계실 것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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