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수화-조재형-

불량아들 2018. 7. 25. 10:59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61)


수화

조재형(1967~ )


황성공원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청각장애 지닌 부부 노점장사 꾸려가고 있다

손님 뜸할 때면 두 사람

쉬지 않고 수화手話로 대화 나눈다

손으로 그려내는 암호 같은 이야기

 

가끔 지나며 짐작하건대

계절 따라 메뉴를 바꾸면 수입이 좀 나아질까 혹은

늦게 낳아 키우는 아이 걱정

그들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부의 대화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을 느티나무

가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수천 가지에 매달린 수만 장 잎사귀 중에

가장 어여삐 물든 단풍잎 한 장

두 사람 무릎 사이로 뚝 떨어뜨려 주신다

수화樹話

그 사랑의 울림이 짙고 깊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61번째 시는 조재형 시인의 수화입니다.

 

필자가 세상을 살면서 경외하는 것 몇 중 오래 산 나무에 대한 경외는 남다릅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그 큰 키를 꼿꼿하게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뿌리를 넓고 깊게 뻗어야 했을까요. 뿐더러 사계절의 변화를 몇 백 년의 나이만큼 지켜보아왔을 터이며, 인간 군상의 온갖 행태를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을 가지 수만큼 해왔을 터. 이러니 경외로 대할 수밖에 없지요.

 

시로 돌아와 봅니다. 황성공원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청각장애 지닌 부부 노점장사 꾸려가고 있습니다. 손님이 뜸할 때면’ ‘수화手話로 대화를 나눕니다. 암호 같은 이야기로 나누는 대화는 계절 따라 메뉴를 바꾸면 수입이 좀 나아질까또는 늦게 낳아 키우는 아이 걱정등 그들의 대화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었던 이는 시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부의 대화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을 느티나무가 있었으며 그 느티나무는 가장 어여삐 물든 단풍잎 한 장두 사람 무릎 사이로 뚝 떨어뜨려 주십니다. 몇 백 년, 사람들이 살아오는 장면을 목도한 느티나무가 정답게 살아가는 청각장애 부부에게 응답한 것입니다.

 

수화手話와 수화樹話의 절묘한 조합!

시인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조화.

사랑의 울림이 짙고 깊은 것은 느티나무를 빗댄 시인의 아름다운 수화手話에 다름 아닙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상하는 이 시는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고 오히려 감동을 배가해줍니다. 좋은 시란 이렇게 우리 마음을 헤집어 놓고, 그 여운을 단풍이 지고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단풍을 덮은 뒤에도 계속되는 이런 시일 것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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