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울음-고재종-

불량아들 2018. 10. 1. 12:06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63)


울음

고재종(1959~ )

 

너 들어 보았니

저 동구밖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

 

날이면 날마다 삭풍 되게는 치고

우듬지 끝에 별 하나 매달지 못하던

지난 겨울

온몸 상처투성이인 저 나무

제 상처마다에서 뽑아내던

푸르른 울음소리

 

너 들어 보았니

다 청산하고 떠나버리는 마을에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끼던 소리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

 

오늘은 그 푸르른 울음

모두 이파리 이파리에 내주어

저렇게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저렇게 생생히 내뿜는데

 

앞들에서 모를 내다

허리 펴는 사람들

왜 저 나무 한참씩이나 쳐다보겠니

어디선가 북소리는

왜 둥둥둥둥 울리겠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63번째 시는 고재종 시인의 울음입니다.

 

시골 마을 초입에 들어서다 보면 꼭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씩이 당당하게 서 있지요. 나무 가지마다에는 새들이 집을 지어놓고 있었고 꼬마들은 오래된 나무에 오르며 새집을 뒤지기도 했고 누가 먼저 오르나 시합을 하기도 했지요. 그늘을 널찍이 퍼뜨린 나무 밑에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평평한 돌이 꼬마들의 놀이터 역할은 물론 빠꿈살이(소꿉놀이)의 안방 노릇을 했지요. 그렇게 시골 아이들은 마을 입구 느티나무와 함께 자랐지요. 때가 되면 동네 어른들은 느티나무에 새끼줄을 두르고 고사를 지냈지요.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에 다름 아니었지요.

 

바람아 불면 느티나무는 푸르른 울음소리로 마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아이들이 학교를 빠지는, 소위 말하는 땡땡이를 친다거나 마을 어른들끼리 자기 논에 물을 먼저 대기 위해 싸울 때는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로 나무랐지요.

 

그러니 시골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는 그저 나무가 아니라 마을어른 이상의 대접을 받았지요. 동네 연세 많이 드신 어른보다도 몇 백 년 이상을 살며 위엄을 뽐냈지요. 그러나 오래 살았다고 결코 거들먹거리지 않았지요. 온몸 상처투성이를 보여주며 세상은 상처를 잘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가지마다 초록의 광휘를 내뿜으며 생의 푸름도 몸소 보여주었지요.

 

삶에 지친 마을 사람들이 경외에 찬 눈으로 한참씩이나 쳐다보는 이유였지요.

 

울음상처를 치유하고 그 울음이 시골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우리 가까이 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북소리처럼 둥둥둥둥매듭 없이 신명나게 살아야 함을 이 시는 보여줍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8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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