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늙은 식사-양문규-

불량아들 2018. 10. 31. 10:58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64)


늙은 식사

양문규(1960~ )

 

숭숭 구멍 뚫린 외양간에서

늙은 소 한 마리 여물을 먹는다

인적 드문 마을의 슬픈 전설

허물어진 담장 위에서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내린다

한낮의 논배미 출렁이는 산그림자를

되새김질하듯 물 한 대접 없이

우직우직 여물을 먹는다

어두워지는 때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움을 찾아 나선다는 것

따순 햇살 흠뻑 먹은 들녘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은,

우리 아버지 뜨뜻한 아랫목에서

벌겋게 밥 비벼 먹는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64번째 시는 양문규 시인의 늙은 식사입니다.

 

늙는다는 말처럼 우리 마음속에 다양한 갈래의 울림을 주는 단어도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늙음은 회환이고 추억이겠지만 어찌 보면 젊음에 대한 대칭점이 아닌, 결과물에 다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숭숭 구멍 뚫린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는” ‘늙은 소뜨뜻한 아랫목에서/ 벌겋게 밥 비벼 먹는” ‘아버지청춘을 지나 늙음앞에 놓여 있다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일구며 생을 바쳐 왔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게으름을 용납지 않는 충실한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이제는 한낮의 논배미 출렁이는 산그림자따순 햇살 흠뻑 먹은 들녘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은” “늙은 소아버지입니다. 먹는 일조차 그리움을 찾아 나선다는 것처럼 그들의 삶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삶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것은 그들의 노동이 신성했기 때문입니다.

 

식사에 젊은 식사’ ‘늙은 식사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이 시에서 늙은 식사가 우리 마음속에 아로새겨주는 느낌은 그 깊이가 크고 강해서 광활한 우주까지 도달할 것 같습니다.

 

늙은 소아버지의 동행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늙은 식사처럼, 고향의 모든 것이 여여하기를 바라는 늦은 가을 오후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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