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탐닉-박완호-

불량아들 2018. 12. 24. 15:22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66)


탐닉

박완호(1965~ )

 

분수대 옆 화단, 길을 지나던 개가 우두커니 서서 노란 꽃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산들

 

산들, 콧구멍으로 숨결이 거칠게 들락거릴 때마다 노란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꽃은

 

저를 쳐다보는 낯선 얼굴 쪽으로 고개를 들이미는데, 둘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꽃봉오리를 쳐다보며 입을 맞추다 하는 개의 콧등에 묻은 노랑무늬가 폴폴 흩어질 때, 담장 위에서는

 

얼룩줄무늬고양이가 납작 엎드려서는 둘이 주고받는 수작을 눈에 새겨 넣는 중이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66번째 시는 박완호 시인의 탐닉입니다.

 

읽다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시가 있습니다. 이는 원시림을 걷는 듯한 청량함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가벼움까지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시 읽기를 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봄날, 개 한 마리가 분수대가 있는 화단 속에 핀 노란 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 냄새를 맡습니다. 개는 상대방을 탐색할 때 냄새로 가늠합니다. 이 개는 탐색 정도를 넘어섰네요. 이미 숨결이 거칠게 들락거릴만큼 도취해 있으니까요. 노란 꽃도 응답을 합니다. “노란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호응을 합니다. “개의 콧등에 묻은 노랑무늬는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개와 바람이 나비와 벌의 임무를 대신해 주었네요.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장면은 그냥 묻힐 수 없습니다. “담장 위얼룩줄무늬고양이에게 고스란히 들켜버렸으니까요. 들킨 정도가 아닙니다. 얼마나 보기 좋았으면 얼룩줄무늬고양이가 눈에 새겨 넣었겠습니까. “새겨 넣는 중이었군요. 봄이 오고 있다는 말을 이렇게 새겨 넣는 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첫 연 끝의 산들이나 둘째 연 첫 단어로 나오는 산들,”은 봄, 노란 꽃과 개의 기분을 더욱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산들소리 내어 읽어보면 더욱 그 맑고 깨끗하고 가벼운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봄은 이렇게 마음속으로부터 옵니다. 세상의 작은 속삭임을 읽을 수 있는 심미안을 가졌을 때,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탐닉하는 게 아닐까요.

 

오늘은 두꺼운 옷 탈탈 털고 집에서 기르는 개의 시선을 따라 동네 한 바퀴 돌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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