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창문-박진성-

불량아들 2019. 1. 21. 10:57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67)


창문

박진성(1978~ )

 

나 다시 태어나면

식물도 동물도 아닌

당신의 창문으로 태어나리라

 

바람 불면 바람 막고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당신이 여는

창문으로 태어나리라

 

애초에 생명이 없어서

영원을 사는

 

당신의 창문으로 당신을

지키리라

당신의 불면을 고요하게

재우리라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67번째 시는 박진성 시인의 창문입니다.

 

식물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다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능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식물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꽃나무는 자신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화살을 날리는 것과 유사한 방법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바닷물을 이용해 씨앗을 옮겨 대륙 저편에서 군락을 이루기도 합니다. 하여간 생명이 있는 유기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살아가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목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시인은 무기체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조자입니다. 그들이 창조하는 세계는 그래서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생명을 부여받아 재탄생한 피조물은 이제 오롯이 당신 것입니다.

 

당신의 창문으로 다시 태어난 바람 불면 바람 막고/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당신이 여는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됩니다. 보호하고 안아주고 같이 호흡하며 당신을/ 지키영원히 살고 싶은 나, 창문입니다. 오지 않는 잠의 고통을 잘 알기에 당신의 불면까지 고요하게/ 재우리라다짐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내가 그 누구에겐가 이런 사람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오늘은 곁에 있었으나 무심했던 사물들, 예컨대 의자, 핸드폰, 안경, 베개, 손수건, 동전 등에게 말 걸고 싶은 날입니다. 말 걸어봐야겠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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