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부조화와 함께 살아가기
이완근(시인)
백인덕 시집 『짐작의 우주』를 읽고
눈이 가려워 시각을 알고
맥이 풀려 때를 알며
목 마르니 계절을 알고
마을을 벗어나서야 시대時代를 알겠더라.
당나귀를 부르면
요령搖鈴도 없이 야시장 뒷길,
말발굽 울리며, 문가에 서성이는 검은 눈망울.
휘-익, 식은 국수 한 그릇 먹는다.
지인知人 만나 생활을 알고
학인學人과 더불어 상황이 이해되고
TV에서 시대를 느끼지만,
뒷동산 버려진 쉼터에서 운다.
마차를 부르면
발굽소리 없이 습지의 건너 편,
검은 흙먼지 날리며, 경계를 위협하는 잿빛 갈기들.
채 여미지 못한 옷자락 나부낀다.
-어디에서 떠날 것인가.
-「난경難境 읽는 밤」 전문
백인덕 시인은 달변이다. 말만 달변일 뿐 아니라 세상만사 모르는 것이 없다. 오랜 시간 백인덕 시인을 지켜보면서 그의 해박함에 놀라기도 했고,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말잔치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그의 독서량에서 나온다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다. 보라, 그의 시에 등장하는 수많은 난경(難境)의 단어들.
주위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튀겨나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옛날 옛적 천상병 시인을 많이도 닮았다. 둘 다 순진무구한 심성을 가졌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천상병 시인은 시인의 본디 마음을 시에 그대로 녹여내 표현했다면 백인덕 시인은 세상과의 불화를 근저에 깔고 시를 창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무엇이 시인을 그토록 불편하게 했을까. 술을 마시면 황동규 선생의 <삼남에 내리는 눈>이나 박목월, 황지우 선생의 시를 멋들어지게 읊어주던, 세상 환하게 웃던 시인에게 세상은 어떻게 다가왔던가.
그의 첫 시집부터 이번 여섯 번째 시집까지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허무주의를 표방한 세계와의 불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불화를 어루만지고 승화시켜가는 과정이 시인의 시 쓰기에 다름 아니며, 이번 여섯 번째 시집에서 보여주는 극복의 과정은 그래서 반가울 따름이다.
“마을을 벗어나서야 시대를 알”고 “식은 국수 한 그릇 먹”으며 “뒷동산 버려진 쉼터에서 운다”는 시인은 “어디에서 떠날 것인가”를 생각한다. 생각이 많으면 세상이 어지럽고, 아는 게 많으면 생이 외로운 법. 시인이 떠안고 살아야 할 숙명이다. 다독과 생활의 불편은 그에게 거추장스러운 “경계”일 뿐이다. 그렇다고 시인은 투덜대며 안주하지마는 않는다.
창문을 열어요,
저 밖에는 티눈만한 눈을 굴리는
새가 있어요, 하늘이 있어요.
-「다시 소망하는 저녁」 일부
시인은 “창문을 열”고 “새가” 있고 “하늘이” 있음을 본다. “새”와 “하늘”은 세상을 향해 손 내미는 시인에 대한 응답이다. 그동안 세상과의 불편한 동거가 “창문”을 닫은 시인의 외로움이었다면 다시 「소망하는 저녁」처럼 마음을 연 시인에게 “새”와 “하늘”은 또 다른 세계로 다가오리라.
외로움, 허무주의를 넘어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에 다가가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이 어떤 결과물로 나타났는지 주목하며 읽지 않을 수 없는 『짐작의 우주』다.
<문학과창작>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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