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빅풋-석민재-

불량아들 2019. 7. 19. 16:50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73)


빅풋

석민재(1975~ )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73번째 시는 석민재 시인의 빅풋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해가 2006년이니 벌써 십 수 년이 지났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봄이었습니다. 위급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채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그때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과연 내가 아버지 없이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 부호였습니다. 딱히 아버지한테 의지를 하고 있었다거나 아버지께서 필자의 생에 관여하고 있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의외였습니다. 더구나 아버지는 중풍으로 3년 정도 자리 보존을 하고 계셨었습니다. 바깥 출입도 못하셨는데 어찌 필자의 삶에 관여했겠습니까. 부모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겐 큰 언덕이 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그때 크게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상여가 나가는 날,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무서운 생각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득합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말기 암환자입니다. 최상급 비극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는 그런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암울한 상황속인데도 호흡은 경쾌합니다. 아버지의,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는 발소리는 리듬감까지 있습니다. 빅풋의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습니다. 말기 암의 엄마는 또 어떻습니까.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아빠를 놀리고 있습니다. 부창부수, 그 남편에 그 부인입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큰 재앙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죽음 앞에서 흐드러지게 애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시인처럼 이렇게 죽음 앞에서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비극적 현실을 기막힌 반전으로 이끄는 결기가 대단합니다. 죽음도 아기처럼 엄마처럼가지고 놀 수 있는 배짱과 여유, 시인의 위트가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빅풋은 보이지 않지만 그런 아버지가 계시기에 이런 여유가 생겼음을 시인은 제목을 통해 암시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2019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