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잠자는 아내

불량아들 2019. 8. 26. 14:06

잠자는 아내

 

머리 희끗해진 아내가

잠들어 있다

가끔씩 표정으로 말도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얼굴에 살아온 날들이 녹아 있다

교복 입은 계집아이

희망도 꿈도 많았을 터

빚질 일 없고 빚 줄 일 없는 고만고만한 삶

남 얘기하지 않고 남 얘기 듣고 싶지 않은 평탄한 삶

지금도 그런 꿈을 꾸나보다

멍들 일 어이 없었으랴

생채기 어이 만들지 않았으랴

가녀린 몸으로 잘도 견뎌왔다

하얀 마음으로 잘도 버텨왔다

가끔은 흐릿한, 희미한 미소를 띄며

자는

머리 희끗해진 아내가

마음속으로 확 다가오는 바람 없는 저녁이다

 

<뷰티라이프>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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