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늙은 시인의 노래

불량아들 2019. 8. 26. 14:08

늙은 시인의 노래

 

늙은 시인이 툇마루에 앉아

졸고 있다

들고 있던 책을 툭 떨어뜨리기도 한다

세상은 장마철의 구름처럼 빨리 흐르고

풀 수 없는 암호마냥 글자들은 춤춘다

늙은 시인은 아이가 보고 싶다,

아니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얀 혀로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뒤뚱거리는 발걸음으로 다른 세계를 만들곤 했지

중얼거리는 입술, 흐릿한 눈빛이 석양에 묻힌다

대나무밭을 출렁이며 가는 이 바람소리도

다 옛것이 되리

토담처럼

늙은 시인은 일어나

허리를 편다

다 지난 일이야

삶은 두터워진 발꿈치의 각질처럼

허망한 것이었나

대나무숲 바람소리 다시 들리고

노인이 된 시인은

오늘 밤엔

단단해진 각질을 기어이 벗겨내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뷰티라이프>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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