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04)
친목계
배선옥(1964~ )
우리끼리 최저임금에 딱 맞춰진 일당에 대해 얘기하던 참이었다 허리가 아파 몇 날을 쉬었더니 월급이 형편없어져서 이번 달은 사는 게 팍팍하다는 볼멘소리를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듣던 참이었다 그나마 나이도 많아 이 짓거리도 언제까지나 하려는지 그 다음엔 또 어떻게 살려는지 모르겠다는 한숨을 겨울날 온 김 쐬듯 어깨를 수그려 듣던 참이었다 우리들의 낮은 테이블 위로 매우 화사한 웃음이 잠깐 지나갔고 땡감을 씹은 듯 아린 침묵이 한참을 함께 앉았다가 갔다 오장육부에 확 불이 붙으라고 생소주라도 한 잔씩 마시면 좋으련만 일용할 양식과 소주 한 잔을 바꾸어가기엔 내일이 너무 비싸다며 입맛만 다시던
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
우리 그냥 맹숭맹숭한 일상만 주억거리는 건 싱겁다고 그러니 다음엔 속 다스려지게 소주 한 잔씩은 꼭 하자고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04번째 시는 배선옥 시인의 “친목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친목을 도모합니다. 초등, 중학교, 고교, 대학을 비롯한 학교 동창회며 고향을 중심으로 한 향우회, 같은 아파트의 동회, 취미를 같이하는 모임 등등 친목 모임이 없으면 마치 살 수 없을 듯합니다. 이러한 모임은 살아가는 힘과 의지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가 모였습니다. 세 여사는 “최저임금에 딱 맞춰진 일당”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허리가 아파 몇 날을 쉬었더니 월급이 형편없어져 이번 달은 사는 게 팍팍”한 우리 이웃입니다. “나이가 많아 이 짓거리도 언제까지 하려는지 그 다음엔 또 어떻게 살려는지 모르”는 가까운 이웃사촌입니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우리 이웃이 아닙니다. “오장육부에 확 불이 붙으라고 생소주라도 한 잔씩 마시”며 생활의 고통을 날려버리고 싶은 우리 이웃인 것입니다. 싱거운 일상을 한 잔 술로 이겨내며 이웃 간의 정을 확인하고픈 슬픈 이웃입니다. 당장 내 카드라도 꺼내 호기롭게 결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냉정합니다. “일용할 양식과 소주 한 잔을 바꾸어가기엔 내일이 너무 비”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애틋하고 헛헛한 마음이 들지만, 이런 우리 이웃이 있기에 우리 사회, 가정, 국가가 튼실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압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화사한 웃음”을 참고 있을 “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님들 파이팅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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